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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손

할머니 꿈

늠름 2016.01.05 19:40

 

가디건을 하도 입어서 프랑스 할머니, 영국 할머니 별명이 붙었다. 흔들의자에서 뜨개질하는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에 울상을 지었지만 실은 뜨개질도 좋고 바느질도 좋고 태생이 할머니스럽기도 해서 별명들이 괜찮기도 했다. 생산적인 여가생활을 하면 퇴근 후 풍경이 달라질 것도 같아 지난 봄에 자수책을 샀다. 버릇처럼 일속에 일상을 살았고, 손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림책 보듯 자수책만 한 장 한 장 읽었다. 언제나 느렸듯 두 계절을 묵히고서야 바늘을 쥐니 프랑스 자수는커녕 이주일 내내 실만 엉켰다. 프랑스 할머니는 아무래도 글렀네 싶었는데 진득하게 잡으니 오리 한 마리가 나왔다. 급하지 않게. 진득하게. 그럼 되었다.

진득한 마음을 중심으로 삼고 싶었다. 마음의 풀기가 끈적이지 않아 내가 싫었고, 그 마음이 부끄러워 달음질했다. 그때는 도망한 게 맞았다. 못난 뿌리로 일상을 살았으니 진득한 중심을 갖는 일이 꿈이 되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고, 머뭇거리다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단단하지 못해서 어서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좋은, 이란 말을 채울 자음과 모음과 음성들을, 아직은 나는. 그래서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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