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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지난, 2005~2015

2011년

늠름 2016.11.24 20:34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 



2011년



2011.2.16.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에 내가 미치는, 내게 닿는 모든 파장들이 시들겠지. 삶이 피폐해질테지. 가장 조심해야 할 생각. 시린 공기의 기운이 다했고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린다. 부들부들한 노래에 마음이 녹았다. 부쩍 예민해졌다. 늘 못난 짓을 한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는데도, 나는 참.

경계가 희미한 사람이었으면 싶다고 오래 생각했는데, 요즘은 감정의 선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면 싶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는 삶을, 어떤 의미로든 파장이 오가야만 하는 일을 선택한 건 나임에도 버겁다, 버겁다,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다. 퐁당퐁당 폴폴 팔팔 통통 깡총 싱긋 날아다닐 것만 같은 말들이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살아봐야지.

 



2011.5.21.

노래에 의지해 마냥 유랑다니고픈 밤

이방인으로 낯설어도 좋으니 멀리멀리 흘러가고픈 밤

익숙하다 싶던 공간이 사람이 익숙한데 익숙치 않아 설운 밤

 



2011.6.7.

시절의 끝이 보인다.

멈추었어야 했다고 자책하기에는 내가 구차해져서. 시간을 잡지도 못하고 옛일을 곱씹기에는 내 마음이 아파서. 어떤 형태로든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시절을 매어두지 못하겠다. 허탈한 마음으로 원망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그 시절이 있어 좋았다고 나를 위로해야 하는 걸까. 내 마음이, 내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2011.7.6.

usb에 파일만 차곡차곡 포개어 가져와놓고, 결국은 일은 건들지도 않고 이 시간까지 노래만 주구장창 들었다. 아침에 사무실에 가면 후회 반복, 똑같은 하루를 보내겠지. 집중력 바닥, 잡생각, 후회 반복, 요즘은 내가 참 한심스러워서. 뭐하고 사나 싶다. 일을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은 늘었는데 정작 일을 해결하는 시간은 더 줄었고, 사람이 늘었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잃는다.

마음을 느슨히 내려놓으니 품을 수 있는 일들이, 사람이 많아졌지만 이면에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늘었다. 마음에 생긴 틈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아야 할지. 혹은 비난받아야 마땅할 허점으로 보아야 할지. 시각의 문제라고 처리하는 태도는 가볍다. 상황이 있고, 나타난 일이 있었고, 객관적인 배경을 가려선 안 됐다. 내가 이랬다. /잘못의 두 단어 사이에 끼어 무언가 조금, 억울했고 그리고 면목이 없었다.

만나는 아이들이 훗날 많이 자랐을 떄, 평안했던 한 시절을 돌이켜본다면 어느 시간을 찾게 될까. 아이들에게 등 비빌 곳은, 시간은 어디였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나는, 내게 평안했던 한 시절은 어디 쯤이었을지, 어디 쯤일지. 시간이 더 지나야 알게 될까.

그만 자자. 평안을 걱정하지 말고, 이순간은 편안히.

 



2011.7.13. Kings of Convenience

나의 로망인 - 기타줄 삐깍삐깍 스치는 소리가 좋고, 부들부들한 톱밥 같은 목소리가 더 좋은 Kings of Convenience. 난 기타 치고 노래 좀 부르는 사람에겐 마음을 폭 놓아버리나보다.

녹음 짙은 평상에 궁둥이 붙이고, 기타줄 띵가띵가 튕기다가 따사로운 볕에 꾸벅꾸벅 조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요즘. 이들의 노래가 위안이 된다.

 



2011,7.12.

결제와 결재가 헷갈리듯이 지치다, 그리고 질리다. 별개의 단어임에도 의미상 영향관계로 봐야 할까 헷갈린다. 지치는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질리고 마는 마음은. 무엇을, 누구를 향한 것인지. 너인지, 나인지, 양자 모두인지. 무엇이든 누구이든 슬픈 바닥임은 분명하다.

캔커피 사러 편의점 매대 앞에 섰는데 캔맥주에 자꾸 눈이 간다. 잊어버리든, 어느 하나만 생각하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엇이 그리 헷갈리다고 마음에 포개두는지, 갑갑한 마음 시원하게 꼴깍 삼켜버리고픈 밤. 마음이 말썽이다.

 



2011.7.21.

집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에 물 사러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KGB를 사버렸다. , 할일 많은데 졸려서 큰일났다. 일찍 끝내고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찍 하기는커녕 잠 쫓아낼 일이 걱정이다. 예전에 한 번 혼자서 사다 마셔보고 청승맞아지는 것 같아서 하지 말아야지, 맘먹었는데 오늘은 또 나쁘진 않다. 인디음악들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싱숭생숭하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어차피, 차라리. 트로트에 자주 나오는 말들. 삶을 어차피 그리고 차라리 살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선호하지 않던 부사였다. 옥상달빛의 노래는 좋은데 자조적인 가사가 불편해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었다. '하드코어 인생아'를 들으면서 신파도 인생의 한 단면이겠거니 인정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느슨한 마음으로 노래를 듣고 있으니 오히려 위로가 됐다. 떄로는, 사람을 일으키는 음악보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노래가 더 힘이 된다. 그만하면 됐으니, 너 이제 쉬어도 된다고. '시간은 기다리지 않고 우리의 지금은 순간이'니까(몽니, 일기).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지나면 견딜 수 있다고.

너에게 난, 이후에 이어지는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생산적인 말이 아니었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최선이 아닌 일들. 마음을 맺는 일도, 어쩌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경계가 흐릿한 앞을 나는 내다보지 못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편지가 잠잠했던 마음을 헤집었다. 자꾸 생각나는 그곳을, 나는 더덕더덕 감정을 덧붙인 채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졸려서 큰일이다. 마음이 되려 더 싱숭생숭해져서 큰일이다.

 



2011.7.22. 브로콜리너마저, 그리고 계피

채소 브로콜리는 까끌까끌하게 입에 구르는 알갱이가 싫어 잘 안 먹는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뭐랄까, 귀에 텁텁하게 배어드는 느낌이 무척 좋다. (그닥 연관성은 없지만. ) 맑은데 세련되게 맑은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텁텁한 혹은 쌉싸름한 느낌. 그런데 그 느낌이 개운하다.

처음에는 앵콜요청금지를 듣고, 거참 이름 독특하군 하고 넘겼고, 브로콜리의 위험한 고백(한희정)을 듣고 그 노래를 이 밴드가 부른 줄 알고(브로콜리 때문에) 마음에 남는 노래가 아니어서 한동안은 잊고 있었다. 유자차였던 것 같다, 이들을 마음에 담게 된 게. 유자차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몽근하게 녹아내린다. 지난겨울, 유자차에 위안을 많이 받았다.

계피가 나가서 아쉽기도 하지만, 또다른 색의 계피를 만날 수 있어 좋고, 다음 앨범에선 다른 보컬들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어서(특히 덕원 씨) 그것도 좋다. 2집 졸업은 씨디로 갖고 있어서 여기에는 없지만, 할머니와 변두리 소년,소녀도 참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이들의 명곡 앵콜요청금지도 물론. EP판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앵콜요청금지가 훨씬 맘에 든다. 당신들이 있어 참 좋다.

 



2011.7.28.

학전에서 온 메일에서 루시드폴 공연 소식을 보고, 보자마자 학전 홈페이지에 예매하러 갔다가 자꾸 튕겨서 인터파크로 갔다. 인터파크 공연에 가니 어어어, 리얼그룹 공연이라니! 정신 놓고 그쪽으로 들어가서 클릭클릭클릭. 어느새 리얼그룹 공연을 예매해버렸다.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을까, 리얼그룹은 'Walking down the street' 동영상을 보고 머리에서 딩동댕 전국노래자랑 실로폰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리얼그룹을 떠올리면 이른 아침 과방이 생각난다. 대학교 일학년, 과방에 가서 선배들 오기 전까지 리얼그룹 내한공연 동영상 크게 재생해두고 과방 청소하면서 허밍으로 어줍잖게 따라불렀는데. 영어 해석도 잘 안 되면서 농담에 사람들 꺄르르 웃으면 나도 따라웃었는데. 그 아침, 싱그럽던 프레시맨 시절.

루시드폴은 서너 시 새벽, 도서관 작은 소음, 풀벌레 소리, , 잎새,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오 사랑'을 처음 들었을까, '사람들이 즐겁다'였을까, 도서관에서 밤 새면서 이어폰으로 유독 많이 들었고, 타박타박, 어두운 길 걸으며 쓸쓸한 마음 달래기도 했고. 많이 훌쩍이기도 했다. 시적인 노랫말이 좋아, 고즈넉히 읊조리는 목소리가 좋아, 쓸쓸한데 그게 또 따뜻해서, 새벽에 자주 찾았던 노래들. 여기에 스위스 개그 킹 농담은 양념으로.

음악이 없었으면 나 얼마나 쓸쓸했으려나. 세상에 음악이 있어서 참 좋다. 참 다행이다.

 



2011.7.31.

Our Last Summer를 듣고 싶어서 묵혀둔 노래들을 뒤적거리다보니 발랄한 노래들이 듣고 싶어졌다.

고등학생 때였나, 한창 음원 파일들을 모아둘 때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폴더를 만들어두고 나름 기준으로 나누어 차곡차곡 포개두곤 했는데. 이 노래들은 여름 폴더 쯤 걸쳐지려나나는 좀더 발랄해져도 되는데, 지난 일주일은 겨울에서도 빙하기 쯤으로 넘어가는 컨디션이었다.

여름철 달뜬 기운이 필요한 시간, 노래로라도 기운 얻어야지.

 



2011.8.7.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분다. 병원에 가려고 나섰다가 열 걸음도 못 걷고 집으로 결국 복귀하고, 오랜만에 일 걱정 접어두고 일요일 같은 일요일을 보냈다. 그제 장 볼 때는 어지간히 정신이 없었나 보다. 옷걸이를 두 묶음이나 샀는데 아동용이라니. 포장 다 뜯어버려서 바꾸지도 못 하고. 요즘 엄청 포화상태이긴 한가 보다.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분명 내일 나는 후회하겠지만, 이참에 좀 쉬어가자고. 스스로 토닥토닥.

쉬는 김에 영화 '수영장'을 봤다. 카세 료는 역시 멋지다. 나무바닥 넓게 깔린 거실과, 맑은물 가득한 수영장. 우리집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수영장 물때 청소 걱정하고 있는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적인 사람인가 보다. 어른이든 아이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좋은 거라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남아있는 사람 생각은 하지 않느냐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냐고 반문하는 십대 딸. 엄마와 딸의 적당한 거리감이 마음에 든다는 청년과, 딸의 냉랭한 마음의 끈을 풀어주던 꼬마. 그리고 할머니. 너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관계로 인한 구속 없이 너는 너, 나는 나, 그리고 때론 우리. 바라봐주고, 보살피는 것. 함께하는 것. 영화를 보고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담뿍.

한때는 욕심 없이, 구속 없이 글 쓰면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치열하지 않고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글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점점 느낀다. 그리고 그 치열함이란, 정신없는 분주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내려놓는, 깨뜨리는, 탄탄히 다지는 생각의 치열함. 정신은 딴 데다 두고, 생각의 중심이란 없고 몸만 분주한 나는, 치열하지 못하다.

치열하게 무언가에 부대끼며 살고 싶어하지만, 한편으로는 오 년 뒤에는, 십 년 뒤에는, 이 위치에, 저 높이에, 디딤돌을 미리 진열해두고 걷는 삶을 불편해한다. 너는 욕심도 없냐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복잡다단함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내 위치에서 성실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도 옳은 삶이 아니겠냐고 생각을 이따금 한다. 이런 생각이, 아이들에게 진로지원을 할 때 '적합한' 가치관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때는 꿈에 다다르려고 간절하게 빌었고 치열했지만, 그 꿈에 다다른 지금, 사실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붙잡아야겠다는 갈망이 줄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겠고 힘이 생기길 바란다. 치열한 정신으로 사는 삶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는 삶,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끝과 끝의 접점이 있겠지. 치열하다고, 너그럽다고, 모두가 각각 한 가지 색은 아닐 테니까.

몇 시간 전보다는 바람의 독기가 한풀 꺾였다. 푹 쉬었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염려만 한다고 달라지진 않으니까. 염려를 잠시 내려두어도, 조금은 괜찮을 테니까.

 



2011.8.7.

옥수사진관의 하늘을 들으면서.

엷은빛 수채화같은, 구십년대 감수성이 생각나는 시간나 그때 초딩이었는데 뭘 안다고 그 시절이 그렇게 그리운 걸까거의 그때 노래들이 아니긴 하지만, 조금은 투박하고, 그러면서 맑은 느낌이 비슷한 노래.

꼬불꼬불 동네 골목길이 생각나는 옥수사진관,

큰 키로 어딘지 허술하게 리듬을 타는데 그 모습이 참 멋졌던 이상은,

나이가 들어도 늘 긴머리 쓸쓸한 소녀 같은 장필순,

혼란스럽던, 외로웠던, 옆자리 친구 얼굴, 운동장 스탠드와 달밤,

고등학생 때 일들을 감정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패닉.

 



2011.8.11.

체한 것 같다. 생리적인 식체가 아니라, 머리도 막히고, 감정도 막히고. 해야 할 것들도 소화하지 못하고 바지런은 떠는데 벙쪄 있는 느낌이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노 선생님이, 나는 더이상 이 아이의 스승이 되지 못함을 느낄 때의 마음. 그리고 아이를 떠나보낼 때의 마음.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즘은. 만나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빛을 발하도록 돕고 있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을, 그러니까 관계를 맺고 조직하고 이끄는 능력은 아무래도 너무 부족하다고 절감하는 요즘, 아무래도 내 성향이나 성품으로는 리더보다는 서포터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오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앉아있으니 생각만 복작복작했다. 더 남아 있는다고 일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에라 모르겠다 접어두고 영화관에 갔다. 영화 '블라인드'를 보는 내내 어찌나 긴장했던지 영화가 끝나고 한참 걷는데도 손이 저렸다. 촘촘한 영화였다.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조였다 풀었다 쥐었다 놓았다 끌고 가는 힘이 노련했다. 앞을 볼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세상을 느꼈을까. 다른 감각으로 보는 세상이 낯설지 않게, 그 안에 스며들게 표현했고,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또 풀어가는 장면들이 나를 건드렸다. 여러 일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공포를, 슬픔을 충분히 느끼기도, 맺기도 전에 장면들이 빠르게 전환됐다. 버거운 감정을 제한하려는 의도였을지, 아니면 제한된 시간에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한계였는지는 사실 헷갈렸지만, 촘촘하고 탄탄한 영화였다.

관객을 찌르는 코드는 정확히 들어맞은 것 같다. 평일 밤 열 시가 넘었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고, 영화 장면에 놀라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더 놀랐다. 그리고 나선 너무 무서웠는데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무언가 공유했다는 안도감도 조금.

한적한 영화관을 기대하고 갔는데 상영관이 꽉 들어차서 실은 조금 쓸쓸했다. 집에 가기 조금 무섭기도 하고, 마음도 허해서 카페베네에 갔는데 홍차라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이곳, 분위기는 참 좋은데 차맛은 그닥. 홍차는, 아직까진 내 입엔 제일 소박해도 짜이만한 게 없다.

아이들이 볼 참고서를 사러 갈 때마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지만, 결국은 읽지도 않으면서 매번 책 여러 권을 충동구매하고 만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그냥 나오기 아쉬워 서점을 한 바퀴 돌았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을 발견했다. 이 드라마 대본을 정말 구하고 싶었는데 책으로 나왔다니, 놓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갖고 싶어했으니까 이건 충동구매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책을 사고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제야 책을 볼 짬이 좀 났다. 책은 여유가 있어야 읽는 게 아닌데, 일을 시작한 후로는 번번이 큰 맘을 먹어야 읽게 되는지 모르겠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마치 사명이라도 띤 듯이. 책은 소소한 일상이었고 습관이었다. 깊게 생각하기를 귀찮아한 이상, 전처럼 일상이고 습관이 될 리 만무했다. 좋은 책을 만났으니, 잘 읽어야지. 마음에 잘 담아두어야지. 읽으며, 많이 생각해야지. 이 설렘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 대본집을 펴내며(4)

마음과 다른 말, 마음과 같은 말, 말로라도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려는, 어리석지만 탓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의도의 말, 그래서 내게 되돌려지는 아픈 말,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말, 상처받았던 말, 머뭇대다 내뱉은 말, 머뭇대다 끝내 삼켜버리는 게 훨씬 나았을 거 같은 말, 그러나 끝내 토해버린 말 같지도 않는 말, 오해를 주고 오해를 푸는. '' 다르고 '' 다른 말이 갖는 오만 가지 생기와 신비로움! 말을 글로 쓰는 드라마 작가란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기를 쓰는 이유는, 객관화하여 보고 싶었다. 순간 순간 나를 흔들었던 감정에서 떨어지면, 멀찌감치 내다보면, 상황을 감정을 이겨내는 힘이 강해질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순간이 또 다르니, 무엇이든 끼적여두면 나중에는 글감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눈이 오는 날, 자분자분 학교 뒷길을 걸었을 땐 이런 생각을 했고, 달밤 치자나무 향이 짙은 길을 걸으며 나는 이런 감정으로 힘들었고, 사람이 좋을 때, 또 사람이 미울 때, 사람이 그리울 떄, 사랑할 때, 이별할 때, 나는 즐거웠고 행복했고 슬펐다는 감정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감정이 농밀했던 시간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감각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그것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감정을, 생각을 좀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고르며 한 단어, 한 문장에 시간을 오래 들여 글을 쓴다. 공들여 쓰는 글이 과연 솔직한 것이냐는 시선에 글쎄, 무어라 대답해야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어의 논리적 거리를 최대한 좁혀 보려는 노력이 행간에 있음을 보라고, 내용에 형식이 가장 가까워지려는 진심이 솔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대상과 표상. 왜 그것을 아예 별개로 두어 생각할 수 없을까. 왜 사물에, 말에, 덕지덕지 감정을 덧붙여서 바라볼 수밖에 없을까. 이건 종이 영수증일 뿐이다. 그렇지만 승차권에 적힌 행선지에 사람이 생각나 버리지 못했다. 이건 음식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늘 보던 바다다. 그렇지만 또 기억이 덧붙여져 마음이 시리다. 그냥 지나간 말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지키지 못해 흩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그렇지만, 몇 개의 문장에, 나는 또 감정을 넣고 시간을 넣고 사람을 덧붙여서, 마음에서 떼어놓질 못하겠다. 한 마디 말이, 한 줄의 문장이, 그게 뭐라고 마음을 흔들어버리는지.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글에서 위안을 받는, 결국은 내가 못났다.

 



2011.8.15.

요며칠 내내 어반자카파의 노래에 푹 빠져 산다. '봄을 그리다'를 들으며, 나는 너와 나의 아름답던 봄을 그리워하는 줄 알았다. 그리운 것이 아닌, 그리는 것이라는 가사를 이제야 이해했다. 봄을 그리는 것이, 봄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감정선이 더 살아나는 것 같다. 너무 그리워서, 내 곳곳 감각에 남은 기억을 그리는 느낌. 그리워서 그린다. 그리니, 더 그립다.

오늘은 양지공원에 다녀왔다. 혼자 가기는 아무래도 쓸쓸해서 고민하다가, 소풍 가는 기분으로 다녀오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커피 하나 사 들고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산들산들 반가운 사람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타박타박 걷는 사이 마음이 가라앉아버렸다. 언젠가 영화에서였을까, 드라마였을까,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꽃다발 들고, 소풍 갈 때 들고 가는 바구니에 샌드위치도 담고, 그렇게 산들산들 가족이 함께 가서 묘지에는 꽃다발 바치고, 옆에 있는 공원 잔디밭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부모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평화롭던 장면이었다. 공원이 정말 공원이었으면 좋겠는데, 하나의 평행선상에 두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르지 않고 오래된 추억처럼, 그렇게 마음에 품을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도 그러지는 못했다. 우리 웃는 얼굴로 마주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다.

보고 싶다. 그립다.

 



2011.8.20.

부러 쓸쓸한 노래만 고른 것 같다. 요즘 마음이 그렇다. 산만하고, 쓸쓸하고, 심란하다. 안팎으로 힘이 들어 왜 나한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결코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라서 다시 마음을 접는다. 그렇게, 꾹꾹 접어 눌러두었다.

얼마 전 알게 된 보드카레인. 핸드폰에 담은 보드카레인의 노래 몇 곡을 듣다 보면, 왠지 시공간을 초월한 시원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편해, 현실도피 생각이 부쩍 들면 볼륨 더 크게 키우고 타박타박 걸으며 듣는다. 노래로라도 잠시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심야식당은 시원한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노래를 아무리 들어도 현실이다. 깊은 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어도 좋다고 합의가 된 사이, 그러나 내 마음이 너와 같을지 마음을 짚어보아야 하는 사이. 머뭇거려야 하는 사이. 괜한 상상을 보태는 바람에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마음이 더 시리다.

 



2011.8.24.

내 삶은, 안심해선 안 되는 모순덩어리인가 보다. 마음에 질질 끌려다닌다. 내가 있어서 마음을 품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나를 쥐락펴락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중심 따위는 없고, 위태롭게 여름이 지나간다.

 



2011.9.8.

여러 일로 바쁘다. 제출 서류 때문에 오늘은 밤새야지 아예 작정해버리니 마음이 편해져서 일이 더 손에 잡히질 않는다. 점점 힘에 부치고, 결국은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몇 가지 정리했다. 마음이 편치가 않다. 외적인 상황이 속상하고 부족한 능력에 갑갑하다. 여러 일들을 벌여두고, 아등바등거리다 결국 한계에 맞닥뜨리고, 내 모습에 실망하고, 후회하고. 예전 어느 날들이 눈앞에 스쳤다. 그떄나 지금이나. 나는 달라지지 않아 속상했다.

김동률의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쓸쓸하고 축축 처지는 기분에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 와닿지 않던 노래였다. 그런데 요즘은 머릿속에서 노랫말이 툭툭, 자동재생된다. 두터운 그의 목소리를 듣는데, 이상하게 화자는 그녀가 떠오른다.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멀어지는 그에게 매달리지도 못하고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돌아서지도 못하는 그녀.

소모적인 생각들은 이제 그만. 울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더 바빠져야겠다. 아름답게 빛나라 청춘아, 눈물일랑 거둬라 청춘아.

 



2011.9.13.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모든 게 어렵다면,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결과적으로 능률이 높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 박준, 어느 인터뷰 중에서.


현실에 치이면 도망가고 싶어진다. 도망갈 용기도, 배짱도, 돈이나 시간도 없는 나는 여행 책들을 기웃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을 제치고 단연 우선순위인 이 사람의 책. 네 권을 다 읽어놓고 새책 안 나오나 검색하다가 그를 인터뷰한 기사 몇 개를 읽었다. 세 권에서 타인을 인터뷰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촘촘히 엮고 행간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닮고 싶은 이들의, 살고 싶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사람, 그 자신의 인터뷰도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냄새가 물씬 나는 사람. 휘청거리던 하루, 그의 이야기에 용기가 조금 났다.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이 싫었다. 그리고 지금은 의무감으로 내 마음을 앞세운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싫다. 무척이나 맘에 들지 않는다. 온전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재단하는 내가 싫고, 지난 시간을 자꾸 곱씹으면서 마음을 착하게 먹지 못하는 내가 나쁘다. 감당할 자신이 사실, 없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보이지도 못한 채 어물쩡거리는 나마저도. 나는 다감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저런 감정에, 생각에 얽어버린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있다. 이것 저것 꾸준히 책은 보는데 소화가 되지 않아 읽었다고 할 수도 없고, 생각이란 물건은 결국 끝이 없고, 농밀하지도 않으면서 엉겨붙는 감정이 치덕치덕 거추장스럽다.

박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또 자유로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의무감을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보지 못하고, 결국은 고개를 돌리고 아닌 척하고 마는 시선이 내 한계다.

 



2011.10.13.

위대한 탄생 2를 보다가 알게 된 두 곡, '피아노의 숲', 'Someone Like You'.

찬란한 숲에서 피아노를 치던 카이가 생각나 멈칫했고, 담담하면서도 절절한 호소력이 좋아 마음에 남았다.

오디션에 도전하는 사람들 중, 이 길 아니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야 떼를 쓰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불편해지는 건, 내가 탁해진 탓일까. 독한 심사평이 매섭다 싶으면서도, 당신들 중 절박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냐고 냉소적인 마음이 들고, 음악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는 것을 깨우치라는 간곡한 평으로도 들린다. 때론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열정이, 하나의 길만을 바라보게끔 베일을 치고 시야를 좁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꿈이 목숨과도 같다고 말할 때에, 그전에 한 번쯤은 자신을 관조할 줄도 알기를. 우린 꿈을 먹으면서 또 현실을 딛고 살아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좀 더, 스스로에게 냉철해질 수 있기를.

2.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마성의 목소리 짙은.

짙은을 알게 된 계기는 좀 황당했다. 동물원 노래에 관심이 있었는데, 어떤 노래를 구입하다가 할인곡에 '동물원-짙은'이 있어서 횡재했다 하고 같이 구매했다. 동물원이 부른 '짙은'이라는 노래인 줄 알고, , 이 사람들 목소리가 이렇게 젊었나 갸우뚱했었는데.

공기에 한 겹 감싸인 목소리, 어딘가 탁한데 맑고, 쓸쓸하면서도 청량하다. 묘한 음색이다. 이런 발성은 어떻게 나올까, 타고 나는 걸까. 한희정과 함께 부른 비밀을 들으며 여자 가수들과 듀엣곡을 부르는 상상을 했다. 묘한 음색이 비슷한 제이래빗은 어떨까, 비슷한 음색이 혹 쌍둥이처럼 닮아 개성이 없진 않을까, 하는 앞선 우려도 해 보고. 어쩌면 몽글몽글 녹는 달달한 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오소영이나 박새별과 함께 부르면 쓸쓸한 마음을 더 후벼파겠지. 나지막한 요조의 목소리는 또 어떨까.

 



2011.10.19.

1.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가 아프진 않니

괜찮니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런 꿈을 꾸는 내가 속상했다.

2.

가을 모기가 극성이다. 동네에는 모기차가 돌아다니고, 집에서 사무실에서 모기와 싸우다 지쳐서 모기향을 다시 사 왔다. 힘이 없어 툭툭 떨어지는 마른 모기가 가엾다 싶으면서도, 손가락에 발등에 종아리에 발진이 올라와서 귀에서 조금만 앵앵거려도 신경이 곤두선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눈으로 좇느라 도통 집중을 못 한다. 모기 만을 탓할까. 내가 부쩍 예민해졌다. 귓바퀴가 콕콕 쑤신다. 여러 일들을,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서 괜히 모기 탓으로 돌린다.

봉사를 시작했고, 일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다. 비영리의 틀에서 사람을 사귀는 일/. 흡수되는 방향을 가늠하는 자체가 어려운 일/. 재화를 창출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개념만 가지고 아이를 만나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어떤 형태이든 사실 말리고 싶다. 아이에게 미칠 영향은 물론이고, 많은 것을 외면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견디기도 어려울 테니까. 그런데 외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렵다.

어디까지 내 생활일까 경계를 그어보는 일이 사실 무의미하면서도 그래도 생각해보니 독립적인 내 생활이 거의 없었다. 넉다운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프트 키를 눌러야 하는 시점.

 



2011.11.7.

'웃음 지으며 모두 털어내고 싶을 때, 혼자 있기가 두렵고 외로울 때, 아무 말없이 함께해줄 사람-.' 혹은 공간이 필요해서, 무엇에 대한 기대가 없어도 이곳에 끄적거린다. 참 오랜만에 글을 쓰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니요, 빙싯 웃었다. 세상에 읽고 싶은 소설이 더 많아서 못 쓰겠다고 번번이 실실 웃지만 내겐 글이, 어떤 열망이라기보단 자기위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나 보다.

요즘 '천일의 약속'을 열심히 본다. 수애가 참 예쁘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많다. 이상우의 캐릭터가 좋다. 내가 미련퉁이여서 그런지 어릴 때 본 만화책에서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드라마든 만화든 내가 바라는 라인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튼. 지형의 어머니가 수애에게 작가라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남다를 테니 아들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가까웠다 생각했던 사람은 가깝지 않았고, 응당 가까워야 할 사람에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감내하지 못하면서, 한 사람의 삶도 아닌 수십 명의 삶을 안겠다고. 감히. 내가.

석 달. 삼 년. 누구나 거치는 고민스런 시기라고, 그 말을 나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단지 시간으로 인한 매너리즘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잠시 거치는 시간일 뿐이라고 설익은 고민으로 여겨버리고 싶었다. 경계를 더 넓힌다면, 어쩌면 문제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무기력한 사람은 더더욱 싫었고, 무력한 사람마저도 되고 싶지 않았다. 네게, 그리고 내게.

 



2011.11.8.

이제야 11월 같다. 이틀 전만 해도, 이렇게 헐벗고 다녀도 되나 싶은 더운 날이었는데. 가을이 자리를 찾는 것 같다. 그치만, 다시 겨울이 오겠지. 한 해의 흐름, 물살이 가장 빠른 곳에 나만 서 있는 것 같다. 공기도 차고, 마음도 시리고.

한 모금 머금으면 명치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노래를 듣고 싶었다. 유자차가 생각났고, 봄눈이 생각났다. 그러다보니 따뜻한 노래와는 무관하게 커피나 차가 들어가는 노래들을 모아버렸다. 잔에 두 손 포갠 온기보다는, 차가운 잔에 밴 쓸쓸함이 짙은 노래들. 노래들이 11월 같다. 그래도 마무리는 따뜻해야지 싶어 옥상달빛도 챙겼다.

이 정도면 됐다. 이제 잠 깨고, 얼른 할일 해야지.

 



2011.11.13.

온몸은 아프고, 작업을 하기 싫어지니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들면서 심술이 있는 대로 다 났다. 딱히 부릴 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한숨만 폭폭 쉬다가 체념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노래를 찾다가 예쁘게 사는 사람의 일상을 엿보며,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볼 때 나도 그래보였으면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노래의 위로일지, 그 사람의 기운일지, 심술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몽실거리는 따뜻한 노래가 좋다. 나를, 그리고 무엇을 탓하지 말고. 조금은 너그럽게. 조금은 여유롭게. 때론 좀 무뎌져도 좋았잖아.

 



2011.11.28.

초저녁부터 잠을 너무 잤다. 다시 잠들려고 용을 쓰다가 더 말똥말똥해져서 일어나버렸다. 어딜 가고, 누굴 만나고,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일요일인데 매번 잠한테 진다. 일요일은 원없이 자야 보상받는 것 같다. 딱히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이렇게 지나는 일요일이 아쉬우면서도, 이렇게 충전하지 않으면 또 아쉬운 일요일.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났다.

해야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은 쓸데없이 솟아오른다. 일도 깜박깜박, 열쇠도 깜박깜박, 드라마 속 남 얘기가 아니다. 요전에는 열쇠가 없어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자고 일어나니 어제 할 걸 싶은 일들 생각이 한가득. 요즘은 어지간히 얼이 빠졌나보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걱정, 과도한 책무감, 부질없는 생각, 굳이 끌어안지 않아도 될 것들을 내 앞에 한 무더기씩 툭툭. 내가 던져둔 셈이다. 그래서 내가 넘지 못하는 셈이다.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그 목도리를 생각했다. 목도리의 쓸모를, 날씨를, 결국은 사람을, 마음을, 기억을. 생각하는 일이 부질 없다. 전경린의 소설에서, 사람은 하나의 산이랬다. 그 산 하나가 품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과 인과관계가,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자신이라고. 그래서 존재를 버티는 일이 버거운 거라고. 어렵다. 내 코가 석 자이면서, 나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부질 없는 줄 알면서도 난 인과관계에 맞지 않는 조각을 끼워맞추고 있었다. 이래서 이랬구나, 그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결국은 자기위안 아닌가. 그만, 이제 그만.

겨울인데 겨울이 아닌 계절. 버거운데 버거워해선 안 되는 일들. 매듭짓고 싶은데 매듭지어지지 않는 마음.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버거운 일들을 해결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그렇게 내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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