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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지난, 2005~2015

2010년

늠름 2016.11.24 20:29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

 

2010

 

2010.2.20..

전기장판과 지나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큰일이다. 밖에 나와 있으면서도 장판 생각이 난다. 앉은뱅이의자를 마련하든지 해야지, 등이 따뜻해지니 생각이 둔해지고, 사회성(?)마저 줄어드는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 결국 되는 게 없어지고, 맘이 편치가 않다. 내 문제를 넘어서야만 하는 이 상황에서 자꾸 약점으로만 눈이 향한다. 강점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잃어버리고 밑천도 바닥난 것 같아서. 존재가 점이 됐으면 좋겠다던 어떤 영화 대사만 계속 맴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어려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여러 상황들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동일한 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을 것.

 



2010.2.28.

버려지는 아픔보다 버리는 맘이 더한 걸 알아요, 라든가, 또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라든가, 이런 노랫말처럼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뿐하게, 담담하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온 시간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의 내공이 쌓여야 할까.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할까.

가볍게 생각할 일을 두고, 또 나는 어렵게 빙빙 돌리며 생각하다가 옹졸하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졌다. 시커먼 방 안에서 귀신처럼 모니터 앞에 얼굴을 띄워두고 이러는 것도 청승맞은 짓이겠지. 싶으면서도.

사람에게서도 도망가지 말고, 과거에서도 도망가지 말고, 문제에서도 도망가지 말고, 회피하지만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우유만큼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땡. 앞으로도 더 오래 스스로를 세뇌해야겠지.

어렵네. 어렵다.

 



2010.4.12..

매일 들고 다니는 얄팍한 책도 이 주가 넘도록 지지부진하며 읽고 있는데, 내일부턴 이걸 읽어야지 싶어져서 책장에서 헌책을 하나 뽑아들었다. 작년 이월, 남포동 헌책방에서 혹해서 사 놓고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 헌책의 단내가 좋아서 촤르르 종이들을 쏟아내렸다. 헌책에서는, 옛날 우리동네 비석거리 상점에서 팔던 50원짜리 초콜릿 냄새가 났다. 왠지 촌스러운, 그래서 정겨운, 그런 단내가 좋았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김소월 시인도, 이장희 시인 이야기도 하고ㅡ. 가까이에 있는 밑천을 활용한다고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지만 실은 대리만족감도 몇 할 정도 차지한다는 게 맞겠다. 사람 냄새 나는 작가들의 삶을 아이들에게 풀어놓는 일이 무척이나 좋았다.

자기브랜드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잊을 만하면 듣고 있는데, 솔직히 지금은 네 목표가 무엇이냐 물으면 또렷하게 말할 거리가 없다. 일 년을 넘겨도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게 목표가 분명치 않은 탓이라고 하면, , 부끄러워해야 하는 걸까. 괜히 찔리면서도 또 아리송해지는 이상한 기분에, 지금 순간에 충실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기특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지 않은 길을 향한 미련이 전혀 없다고도 못하겠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끝을 바라보며 하는 것은 마음이 쓸쓸해져서, 좀체 기운이 나질 않아서, 다만 지금은 더 많이 배우고 싶다고, 더 많이 능숙해지고 싶다고, 더 많이 충실해지고 싶다고, 지지부진하게 움직여도 순간을 곱씹으며, 그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 싶다. 무엇을 얻고, 어떤 자리에 서고, 그런 것 말고도 꿈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많으니까.

 



2010.4.22..

1.

최하림 시인의 비보를 들었다. 언젠가 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부고 기사를 읽고 그것이 무슨 시였을까 골똘히 생각해도 좀체 떠오르질 않았다. 바보같이 시도 떠올리지 못하고 어렴풋이 기억하던 시인이었다.

최하림 시인은 시론을 가진 시인이 되고 싶지 않고, 시를 가까이 느끼고 따라가는 시인이고 싶다고 말했었다. 만지작 만지작, 마음에 잡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읽고, 무릇 글이란 이래야 한다고 주창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도, 글이 좋아 마냥 좇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오래 생각했다.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이름만 알아도 비보를 듣기가 아프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그 일도 잦아지겠지. 그리고 직면하는 일 역시, 잦아지겠지. 직면하지도 않은 일을 지레 겁먹어 마음에 쌓아, 또 아프다.

시는 사실 가재미밖에 모르지만 글이 좋아 문태준 시인에게 믿음을 쌓고 있다. 이홍섭 시인의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시집의 발문 중에 이런 말을 했었다.


시는 상자에 담는 것이 아니다. 시를 상자에 담을 때 시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나는 가령<, 이 시집은 왕버들 가지들이 연못에 척척 내려앉는 시들이구나>이런 식으로 부르고 싶다. 시를 상자에 자꾸 담으려 할 때 그것은 획일적인 강제가 되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시가 있는 자리에 아이들을 넣고, 나를 넣었다. 상자에 담겨져서 위태로웠구나. 상자에 담으려 해서 위태롭게 했구나. 아무리 마음을 울리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생각이라 해도 일상을 유지하는 동안에 잊고 지내게 마련이다. 시가 이야기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겠지.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 이따금 읽는 시에서 그런 마음의 단면을 읽을 수 있어서, 아련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게 해 주어서 시가 고마웠다.

문장집배원을 하고 있는 문태준 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곱고 또 입에 착 붙는 우리말을 잘 쓴다. 그리고 주관적인 느낌일지 모르나, 쉽게 꺼내지 않고 고르고 골라 말을 잇는 흔적이 보인다. 이 시인뿐일까. 시를 마음으로 마주하는 많은 시인들도 그러겠지. 담박한 시가 좋았다. 쉽게 말하지 않는 시가 좋았다. 말을 아끼는 시가 좋았다. 그렇게 아낀 말이, 행간에 자간에 읽히는 시가 좋았다. 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재주도 없지만, 쉽게 말하지 않는 시 같은 산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 마음은 여전한데 여전히 글은 수다스럽고 담박하지 못하다.

고심해서 고르는 말을, 글을, 솔직하지 못하고 겉멋들었으며 꾸며졌다고 비판하는 말도 어쩌면 옳겠다. 그렇지만 달변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 달변가가 부러울 때도 많지만, 만약 달변가가 된다면 유창한 말솜씨에 조심스런 마음이 가려져서, 나도 모르게 상처 주는 말과 텅 비어버린 말을 해 버릴 것만 같다. 무엇이든 쉽게 생각하지 않는, 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내 모습대로라면, 말을 그만 아껴야 하는데.

시론을 갖지 않고 글은 무릇 이래야 한다고 하지 않듯이, 다 이해한다는 듯 다 안다는 듯 사람을 상자에 담지 않기를. 내가, 우리가.


2.

며칠 전 과자가 먹고 싶어서 마트에서 무얼 살까 이것저것 훑고 있었다. 옆에서 조그만 꼬마가 '코카콜라 맛있다'로도 고르지 못해서 '오렌지 방구'까지 불러대고 있었다. 이 노래가 이렇게 유서가 깊었다니, 아이가 참 예뻤다. 나는 지금도, 공터에서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그러면서 종종종종 온몸으로 뛰어다니는 꼬마들을 보면 맘이 설레고 괜스레 신이 나는데. 아이의 어느 시기부터 이런 놀이는 유치하고 지루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난 아직도 팔방이 좋고 술래잡기가 좋고 무궁화꽃이 좋은데. 마냥 그맘때였으면, 싶어서일까. 험한 일 모를, 마냥 그때에 머물렀으면 싶어서일까.

돌아봐도 좋지만 그때로 돌아가겠다고 말해선 안 되는 게 인생이라고, 오래 전 글을 읽으며 끄덕였다. 그래선 안 되는 상황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 구절에 숨이 먹먹해져서 만지작 만지작,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나는 여우야 여우야가 좋다고, 그렇게만은 살 수 없는 것이 성장이려나 싶었다.

십대면 십대, 이십대면 이십대, 그렇게 그때 그 나이를 사는 게 답이라고 하지. 어리다고 얕보지 말아야 하고, 어른이라고 고루하게 보아서는 안 되지. 몸의 키만큼, 마음의 키도 그만큼 키워야 한다고 하지. 더도, 덜도 아니고, 꼭 그만큼만. 나는 참, 나이를 살아가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2010.5.15. 서울재즈페스티벌

월요일 출장이 있어서 주말에 볼 만한 공연이 있는지 찾다가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걸 알게 되었다. 음악축제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데다가, 루시드폴이라니! 횡재다! 이런 기분으로 표를 예매하고 언제면 공연날이 될까 시쳇말로 학수고대했다. 그 주, 유난히도 아이들이 말썽을 부렸다. 머리가 복작복작해져서 도망가자 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다. 일단은 좀 쉬어가자고, 사심을 품은 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재즈페스티벌 마지막 공연, 푸디토리움. 루시드폴. 정성하. 세르지오 멘데스.

첫 번째, 푸디토리움과 루시드폴.

푸디토리움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푸근한 미소 지으며 따뜻하게 연주하는 이 분도 멋졌지만, 그 뒤에 함께하는 세션들과 주고받는 눈짓, 호흡이 참 좋았다. 눈으로, 악기로 주고받는 대화에 얼마나 서로를 믿고 있을지, 든든하게 여길지, 아빠미소 지으며 연주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좋았다.

다음으로 루시드폴. 앨범 자켓 속 사진이 그대로 걸어나와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발그레한 불빛 속에서 그 사람이 노래하고 내가 앉아있는 시간이, 진짜인가 싶었다. 첫 곡을 다 부르고 혼자 빙긋 웃는데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루시드폴 공연 보기, 소원 하나 이뤘다

루시드폴, 푸디토리움과 근황을 주고받으며, 뜬금없이 "뉴욕의 날씨는 어떤가요?" 묻고, 이에 못지않는 푸디토리움, 단답으로 "더워졌네요." 여기에 이어지는 루시드폴의 말,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더워지네요." ㅡ 엥? 1초간 정적 뒤 다들 한바탕 웃었다. 이어서 여러 말들이 오가고, 루시드폴, 다시ㅡ "푸디토리움의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벅차요. 그래서 단추 하나가 터졌어요."라고. . 푸디토리움 자신도 이 분의 개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 따라잡질 못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루시드폴,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해졌다. 특히 이 하이개그의 세계도.

푸디토리움이 루시드폴을 소개하며 말하길, 루시드폴이 자신은 진솔한 음악인이 아닌 것 같다고, 프로답지 못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루시드폴이 했던 이야기를 대신 풀어가면서, 자기는, 삶과 가치관을 음악에 담아내는, 그래서 삶과 음악이 일치하는 이 친구가 좋다고, 이런 음악이 좋다고, 이런 것이 음악이라고 말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루시드폴의 나긋한 목소리는 참 좋았다. 따뜻한 목소리였다. 일명 스위스 개그라며 듣는 이를 편안히 해 주었던 위트와, 따뜻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음악. 이 사람은 정말, 음악처럼 살고, 삶처럼 음악을 할 것이라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을 거라고, 괜스레 믿음이 섰다. 온기를 담뿍 받았다. 내 날들을 살아가는 데, 앞으로 한동안 힘이 담뿍 나겠다고, 마음이 무척 든든해졌다.

+'길 위'에서 강아지가 화자였단 걸 공연에서야 알았다. 앨범 맥락도 생각지 않은 채, 왜 새삼스럽게 사람 체온 얘기를 하나 갸우뚱하며 들었었는데. 강아지가 화자라니, 노랫말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두 번째, 정성하 군.

아이다. 내가 늘 만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다. 떨림이 있었다. 곡을 소개하는 목소리에, 말과 말을 잇는 그 사이에, 능숙하지 않고 끝을 얼버무리며 마치 버스 내릴 역 안내하듯 이번 곡은 ㅡ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처음 연주하는 곡입니다, 이렇게 간결하게 말했다. 연주하는 동안은 아이일까 싶을 만큼 굉장히 진지했다. 연주가 끝나면 곡 하나하나마다 일어서서 꾸벅 인사하고 마이크를 끌어당겨 감사합니다, 꼭 말했다. 역시 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프로스럽지 않아서 더 좋았다. 친숙했다고 해야 할까. 아직 아이구나, 아이여서, 뭐든 마냥 예쁜 그런 모습이랴 해야 할까. (프로랑은 다른 어떤 느낌?) 튜닝할 때 침묵을 메우려고 하지 않고 잘 될 때까지 크게 소리내며 하는 모습이, G-Dragon의 열렬한 팬이어서 '하루하루'를 연주 목록에 넣고 '간단히 뚝딱 편곡했어요' 하는 자신감이, 자기가 말하고 또 쑥쓰러워하는 수줍음이, 곧 내게 될 첫 앨범에 대한 자부심이, 연주를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도망가듯 들어가는 모습까지, 아이다운 모습이 연주에, 말에, 표정에 읽혔다. 파닥파닥거리는 싱싱함이 있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어떤 일상을 보낼까 궁금해졌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모습과 비슷할까. 성하 군처럼 고타로 오시오의 황혼을 제일 좋아하는 웅혁이의 모습도 있을까. 이 아이에게 기타 연주는 즐거운 놀이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핑거스타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러잖아도 웅혁이가 생각났는데, 역시나 웅혁이가 이 년 넘게 절반만 도돌이표로 연주해서 친숙한 황혼을 들려주었다. 덕분에 끝까지 다 들었다.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타를 장난감처럼 즐겁게 갖고 노는 웅혁이가 생각났다. 영화 '개와 나의 10가지 약속'에서 손이 상할까봐 강아지를 쓰다듬지도 못하는 기타리스트 꼬마도 생각났다. 만화 '피아노의 숲'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고된 연주를 훈련하는 슈헤이와, 왜 피아노를 즐겁게 치지 않냐고 반문하던 카이도 생각났다. 그것이 기타든 피아노든 그 무엇이든, 열중하던 것이 즐거움에서 부담으로 넘어가는 그 경계가 어디쯤일지, 생각이 소록소록 피어났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성하 군에게 기타가 오래오래 즐거운 놀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랐다.

+아이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게 내 일상이니까, 그 일상이, 내가 겪는 일상에 얽혀있으니까. 도망치듯 왔는데, 반성하라는 벌인가 보다. 부끄러웠다.

세 번째, 세르지오 멘데스.

정말 열정적인 할아버지! 잔잔했던 공연장이 난리가 났다. 에너지가 가득가득 넘치고 흘러서, 몸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그런 음악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몸을 들썩이는 것이 거북스러워서 주변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공연 중반이 지나서 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눈치보고 있었으려나.) 박수치고, 뛰고, 격하게 리듬타고, 환호하고, 알지도 못하는 노랫말 우물우물 따라부르고, 땀이 흥건할 만큼 음악에 빨려들었다.

라틴을 흥겹게 만드는 그 힘은 무엇일까. 감정이 출렁이는 시, 재기발랄한 소설, 춤추지 않곤 못 견딜 음악, 힘든 삶을 앞에 두고도 열정적인 사람들, 모두를 닮게 만드는 그것이 라틴의 힘일까. 정말이지 멋졌다. 이 말을 얼마나 해야 그 충만한 기운이 설명될까.

결국 나오면서 부스에서 파는 씨디를 샀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슬픔도 기쁨도 열렬하게 뱉어내는 라틴. 한국의 한과 신명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 더 많이 듣고 읽어보면 좀더 손에 잡힐 무언가가 생길 것 같다. 라틴 음악을 많이 듣고 싶어졌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씨디들을 듣는데, 세르지오 멘데스의 음악만큼은 공연장에서 날뛰던 흥이 좀체 살질 않아서 속상했다.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볼 수 있을까.





2010.6.19.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연극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세이레아트센터)

어릴 땐 어디 다닐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스물이 넘어선 왜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거나 맘껏 놀러다니질 못했는지. 실컷 놀고 크게 웃고, 나는 이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 다른 일을 찾기 힘들어질까봐 여행 한 번 가질 못했다. 그리도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며, 그렇게 사 년을 다 보냈다.

청자 생활을 하면서 인솔자 명목으로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아이들 덕분에 한 번도 못 가봤던 많은 곳을 가고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일찍, 여러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내 시야가 더 넓어져 있었을까. 책으로만 배웠던 문화적 자본의 의미를, 이제야 몸으로 다시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토요일 일을 마치면 남은 주말을 겨울 곰처럼 방에 처박혀 지냈다. 이 짓 이제 그만하자 싶어 갈 만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게으름 값 한다고 열심히 찾기만 하고 또 나가진 않다가, 미리 티켓까지 예매했으니 이번에는 꼭 가겠지 싶어 계획을 세워두었다. 지난 오월에 서울에 다녀오고 나서, 그곳의 무수한 소극장과 다채로운 공연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은 꽤 있었다. 게으름이 문제지, 지역만을 탓할 게 아니었다.

코스모스 사거리에 있는 세이레아트센터. 이 년 전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지나던 길이었는데, 그 길목에 소극장이 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어색한 정장 입고 졸린 눈으로 일하던 그때도 생각나고, 유일하게 혼자 쉴 수 있어서 숨어있듯 박혀있던 점심시간도 생각나고, 오늘 오랜만에 찾았더니 국숫집으로 바뀐 서점 터도 아쉬웠다. 대책도 없이 위태위태하던 스물 둘이 멀어진 걸 느끼면서 나이를 먹긴 하는구나 싶어졌다. 어릴 때 스물 언저리에 있던 여배우들이 지금은 미시브랜드 광고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 굉장히 낯설고 이상했다. 이십 대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나이가 꼭 그랬다. 낯설었다.

자그마한 극장, 예닐곱 명쯤 되던 관객들, 소박한 무대. 바로 눈앞에 배우들이 올 때마다 눈이 마주칠까봐 혼자 소심하게 고민했다. 보통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였다면 어색해서 눈도 못 마주칠 거리였는데도, 미묘한 각도로 눈이 한 번도 마주치질 않아서 편하게 봤다. 두 번째로 보는 연극이었다. 영화에서는 장면의 주인물울 클로즈업하는데 연극은 그렇지 않으니까 한 인물을 보면서 뒤에 움직이는 다른 인물도 보느라 눈이 바빴다. 그렇게 여럿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는 게 재미있었다. 눈이 닿지도 않을 것 같은 구석구석까지 신경쓴 무대장치와 소품 구경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보는 것도, 사람냄새 묻어나서 이것도 삶이구나 싶은 배우들의 연기도, 끝난 후 돌아가며 배우들과 주고받는 인사도, 오늘 반강제(?)로 찍힌 배우와 관객들의 사진도, 모두 재미있었다. 겨우 두 번 본 내겐, 연극은 아직 신세계이다.

구십년 대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번화가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또 절박한 삶이 그랬다. 인물들의 직업과 성격과 대사가, 애정행각까지도, 서울의 달이나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친근했다. 돌아가는 길에 리플렛을 다시 보니 구십육 년 최다관객을 동원했던 작품이라 했다. 요즈음 구십년 대의 감수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쓰비 캔 그림이 순정만화스러우면서 친숙한 그림체로 바뀐 것을 보면서 감수성을 상업에 반영하는구나 생각했다. 세련된 컴퓨터 글씨에서, 아기자기하거나 부러 촌스러워진 손글씨로, 또는 그것을 흉내내는 인쇄글씨로 돌아가는 각종 판촉물과 광고가 또 그랬다. 구십년 대의 가요나 드라마, 만화영화를 정리한 블로그 포스트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무렵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던 나 역시 칵테일 사랑을 흥얼거리고, 시인과촌장과 더클래식의 노래들을 찾아 들으며, 아이들에게 꼬비꼬비의 백두무궁 한라삼천도 모르냐고 재잘대고 있었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 무렵의 감수성은 온기가 있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어서 기억에 미화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겐 그랬다.

그들이 살던, 맞은편에 한강이 시원히 흐르고, 밤이면 멀리 압구정동 불빛이 찬란히 보이던 옥수동의 집. 맞은편 보이는 압구정동은, 그곳을 부러워말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일지, 아니면 언젠가는 그곳처럼 찬란히 살 수 있다는 앞날의 희망일지, 어떤 의도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지 궁금했다.

오가는 말들에서 행복이 자주 쓰였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행복일 테고,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흩어져버릴, 여러 추상명사들 중 가장 주관적인 말이지 않나 싶다. 행복이라 생각하면 도망가버릴까봐 불안해서 싫었고,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억지스런 자기위안을 삼는 것도, 행복하지 않다고 자학하거나 위악을 부리는 것도 싫었다. 나한테는 그냥, 조금 거추장스러운 말이라고, 오래 생각했었다. 더 큰 행복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것이 맞는 걸까. 더 나은 무언가가 이루어진 삶을, 꼭 행복이라고 명명해야 할까. 아니면 차 마시는 것도, 음악 듣는 것도 다 행복하다고 마냥 낙천 속에 사는 게 맞는 걸까. 행복에 관해 말해야 할 자리에 있으면 생각이 복작거려서 뜸을 들였고, 그러다가 생각했던 대로 솔직히 말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쾌활하지 못한 성격이거나, 지난날의 콤플렉스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참 멀리 있는 것만을 돋움발 세우고 바라고 있는 것보다, 다만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압구정 불빛이 부럽지 않았다. 앞으로 지금의 삶이 그대로 이어진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먼 미래를 상상하거나, 미래에 힘을 싣길 힘들어하나 보았다.

. 매체의 힘이 커서, 압구정동 하면 어릴 때 신문이나 뉴스에서 많이 나왔던 오렌지족이 생각나고(이분들 지금은 중년을 향해 가고 계시려나), 옥수동 하면 옥수사진관이 생각난다. 옥수동에 작업실을 차리고 멤버 모두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옥수사진관이라 이름지은 프로젝트밴드. (옥수사진관을 처음 알고 이것저것 검색해 볼 때, 옥수수사진관으로 검색한 사람이 꽤 많았다는 걸 알고 혼자 자지러졌었다.) 이제 옥수동 하면 오늘 본 연극도 같이 떠오를 테다. 실제의 옥수동은, 또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2010.7.7.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렇게 오래 뒤척거릴 것을, 그러면 독해지든가, 독하지 못할거면 흉내내질 말든가,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죄책감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는 시간을 돌릴 수 없겠다는 허탈함을 두고, 나는 무릎을 꿇을 수도, 목놓아 울 수도, 그것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았다. 우두커니 있었다. 무력했다. 그리고 무책임했다. 몸에 주먹을 내리쳤다. 내 몸이라 아프게 때리지도 못했다. 아프지도 않은 주먹을 치면서, 원망도 자책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이제는 이따금 마주하는 현실이, 현실같지도 않았다. 이제는 요동치지도 않는 마음이 미웠다.

 



2010.7.9.

치킨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콩나물에 밥공기를 뚝딱 비우는,

비 춤을 따라추길 좋아하는,

멋부릴 줄 아는,

발차기를 잘하는,

잔소리도 할 줄 아는,

유난히도 깔끔한,

속이 깊은,

자전거도 잘 타는, (이건 뒤늦게야 알아버려서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너 알고 있을까.)

속눈썹 긴 눈이 참 예쁜,

너의 날.

잘 있다 갔니?

널 아끼는 이들에겐 언제나 진행형이니, 네게도 내가, 우리가 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2010.7.13. 라디오처럼

하루가 옮겨가는 틈. 한동안 CD를 들으며 지내다가 시계 약도 떨어진 김에 시간 가는 것도 느낄 겸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고민하던 것과 관련된 사연이 나왔고, DJ가 나도 괜찮게 읽었던 책을 추천했다. 아일랜드의 '지중해에 가고 싶다'를 몇 년만에 들었고, 영화음악 프로에서는 카세 료를 오래 소개해 주었다.

이래서 라디오가 좋다. 우연이 필연일까 싶을 만큼, 이따금 우연히 틀면 잊고 있던 지난 노래들이 살아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딱 맞춰 DJ를 시작한다. 야간알바를 시작한 첫날, 고등학교 때 즐겨듣던 스윗뮤직박스 디제이에 정지영이 다시 돌아왔다. (또 한동안 안 듣다가 얼마 전 오랜만에 틀어놓으니 마지막 방송이었지. ) 야간알바하러 걸어가던 주말, mp3로 처음 들은 라디오에서도 이적이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처럼 카세 료의 이야기를 오래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심야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정서가 비슷할까 싶을 만큼, 사연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스며든다.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건드려주는 라디오. 나도 라디오같은 사람이었으면 싶다. 아침 라디오의 싱그러움도 닮고 싶고, 심야 라디오의 고즈넉함도 닮고 싶다. 오후나 저녁 라디오의 유쾌한 기운은 물론 절실하고.

 



2010.8.16.

지독히 더운 밤.

눈이 곰실곰실하길래 뒤척이는 것을 참으며 억지로 잤더니 겨우 세 시간 됐을까, 잠이 깼다. 짜증스럽게 뒤척이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아예 일어나 버렸더니 내일 일이 또 대책이 서질 않는다. 지독한 더위. 몰입이 안 되는 탓이 다 더위 때문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요즘. 그것이 핑계거리라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말이다. 무엇에 집중하지도, 무엇을 선택하지도 못하고 한 해가 절반도 넘게 간다.

오랜만이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마음을 풀어놓는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싶었다. 애초부터 달라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끼적거린 것도 아니었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어영부영 지내면서, 글이 또 무엇이라고,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일에서든 삶에서든 느슨해지는 내가 답답했다. 자극에 무뎌지는 내가 두려웠다. 외면하는 관계가 버거웠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에 질렸다. 마음을 묶어놓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불투명한 내가, 싫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문장배달을 시작한 이후 1년 동안, 수많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는 것.12 31일 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선 겨울나무가 새해 아침 온전한 겨울나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다들 힘내세요.

2009. 4. 30. 문학집배원 김연수.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문학나눔에서 오는, 김연수의 문장배달을 참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이였을 때'의 한 토막을 배달하면서 남기는 말 가운데 한 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적어두었더니 마음에 맴돈다. 누구에게 필요하겠지 챙기면 실은 내게 우선적인 말이었다. 다른 모든 일에도 영악해지기 싫지만 그렇게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한없이 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 무수한 변화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것, 나로 돌아오는 것. 무엇에도 무뎌지지 말자고, 오래 곱씹을 수 있는 것. 문장을 다시 읽으며 그때가 떠올랐다. 안을 간수하지도 못하면서 밖으로만 나돈다는 말을 그때 많이 들었다. 원망을 꾹꾹 구겨담으며 더 오기를 부렸다.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여전히 나는 잘하는 것 없이, 그렇다고 오기를 부리지도 못한 채 여기에 있다.

해야 할 것이 많겠지. 하지 못하는 것에만 생각을 미치며 자신감을 구겨넣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달라질 것이 없다고 뒤를 닫아놓으면 나는 좀더 앞날에 집중할 수 있을까. 나를 우선에 두어도, 되는 것일까.

 



2010.8.23.

부쩍 머리가 많이 빠진다. 가뜩이나 숱도 적은데. 왠지 모공도 늘어지는 것 같고. 쌍꺼풀인지 주름인지 정체모를 선은 지워지지도 않고. 안정된 곳 어딘가에 정착해야 할텐데 걱정도 되고. 이런 걱정 속에 어느새 스며들어있을 때, 흠칫. 현실적인 걱정들 속에서 내가 컸긴 컸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왠지 씁쓸하다.

머리카락이 팔에 툭툭 떨어지고, 이게 느껴질 만큼 예민해진 건가 생각을 하다가, 또 아이의 말이 실은 많이 서운해서 자꾸 생각이 났고. 그러다 지금은 나는 뭐 이리 마음에 많이 담아두나 싶어졌다. 마음이 다치는 것은, 온전히 내 버릇 탓이다.

미뤄두어선 안 되는 것들을 미뤄두었다. 솟아나는 감정들도 눌러두었다.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아일랜드로 가고 싶은 밤이다.

 



2010.9.18.

배낭 들추어메고 한껏 걸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낯선 버스를 타서 경복궁으로 갔고, 한옥 사이사이, 나무들 사이로 한껏 걸었다. 오랜만에 엑시무스와 똑딱이도 실컷 갖고 놀았다. 옆 국립민속박물관도 구경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가서 별밤축제 야외공연도 보았다. 타박타박 함꼐 걷고, 지치면 또 잠시 쉬고, 사진도 찍어주고, 함께 환호하는 벗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잠시 마음이 멎는 일이 생기고, 그냥 한 개체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지 가라앉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타심이 극대화되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못내 이기적으로 굴고 있는 나는, 사람을 찾으며, 동시에 사람을 멀리했다. 이중적인 마음을 품은 채, 무엇 하나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사는 것 같았다. 마음을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내가 조금 쓸쓸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자아가 있다고 하지. 환경을 지우고 경험을 지우고 모든 영향관계를 지웠을 때 고유하게 남는 내가 있을까. 고유한 나는 무수한 파장들 속에 달라졌을까, 지켜졌을까. 박물관에서 까마득한 날들의 유물을 보면서, 이 시공간 속에서 내가 태어났다면 어떤 품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만일 그랬다면, 그건 내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자격지심. 어느 곳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든, 마땅한 사람인가에 관한 고민은 좀처럼 떨춰낼 수 없는가보다. 지난날들을 어떤 형태로든 마주할 때마다 생산적이지도 못한 고민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훗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며, 땅을 치고 나서야 생각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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