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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지난, 2005~2015

2009년

늠름 2016.11.24 20:24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

 

2009

 

2009.2.4.

몇 개의 고민이 끝났다. 조금은 아니 많이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이기적으로 굴어서 생긴 죄책감만큼,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나는 또다시 이상한 고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감은 눈을 다시 뜨지 못할까봐 두렵다. 이상한 두려움이지. 내 고민들의 팔할은 아마- 외부적인 상황 탓이 아니라- 자꾸만 나를 다그치는 이 내부의 문제일 것이다. 나를 다그쳐야만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버릇 탓에 숨이 막힌다. 이것은 장점인지 단점인지. 내가 지닌 장점들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찾아와야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2009.2.5.

신경이 비죽거린다고 말까지 매서워지면 안 되는데 심호흡 한 번 하거나 조금만 너그러워져도 될 일을 매서운 말로 다그치고만 있다.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를 온전한 아이 전체와 동일시하면 안 되는데 단단할 것 같던 믿음이 조금씩 허물어진다. 어느 순간 회초리로 다그치고 말로 다그치는 내가 되어 버렸다.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마음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일런지. 익숙했던 이 자리가, 내가, 낯설다.

 

2009.2.14. 자책.

요즘은, 두근두근거려서 산 많은 책들도 삼분의 일도 못 읽고 싫증내 버리고, 책 읽고 느낌 정리하는 것도 귀찮고, 글쓰기는 자꾸 가식적인 것 같아서 몇 줄 쓰지도 못 한 채 다 지워버리고, 아침이 버거워져서 핑핑 시간만 날려버리고, 자꾸 찌푸려지는 미간이 신경쓰이고, 모진 소리만 해서 매일 후회하고, 사회철학 강의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 예민해지고, 어깨는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결핍된 느낌만 내내 들고, 잠은 또 쉽게 안 들고, 느슨해진 안경 탓에 일이 더 잘 안 되는 것 같고, 계획했던 공부들은 손에도 안 잡히고, 어려운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한 두 가지만 쓰자고 했던 짜증들은 왜 이렇게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고, ……

불평을 꺼내놓자면 물밀듯이 쏟아져나와서, 결국은 생각하기 나름인가. 이 모든 것들을 불평이고 짜증이고 짐으로 여긴다면 그 밑에서 버둥거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일 테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지나가는 흐름 중 몇 개의 점들이라고 여긴다면 얼른 풀어버리면 개운해질 수학문제 몇 개 정도로 여긴다면,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유익하게 풀어나갈 수 있겠지.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흘러가는 이 모든 순간들에 내가 치열하게 몰입하지 못하기 때문일 테고, 치열하게 몰입하지 못하는 까닭은 간절하기를 유예하고 있기 떄문일 테고, 곧 문제는 나 자신. 풀어가는 것도 나 자신.

 

 

2009.2.20.

전화 하나, 청소하며 맘을 겨우 추스른 쉼표 하나를 지워버린 또 전화 하나, 잠을 자라고 하는 말이, 축하한다는 또 다른 말이, 그 말들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한참 움켜쥐고 있어야 했다. 혼자만의 망상 속에서 과도한 책무감이 너무 무서웠다. 말을 하지 못했고, 침묵이 거짓말이 됐고, 결국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은 가장 먼저 나 자신이었고, 그리고, 그리고……. 안으로 안으로 나를 다그치면서, 어쩔 수 없다고, 내 잘못이었다고, 이제는 늦어버렸다고, 결국 나는 죄스런 마음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다고 해서 원점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것일테니 말이다. 나를 자꾸 다그치면서 울음을 삼키는데 지나간 내 아픈 시간들은 그래도 사실이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코 해선 안 될 말이므로 삼키는 것이 맞았다. 마음의 무게가 호흡기를 잡아 끌어내려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무게에 내 몸까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2009.3.18.. 불안

새벽 혹은 밤늦게 고모께 전화가 왔을 때, 연락이 거의 없던 사람이거나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혹시나 무서워하는 소식을 접할까봐 덜컥 겁부터 난다.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어둠을 바라볼 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봐 무섭다. 어른들이 입에 올리길 꺼리는 것처럼 나도 그 말을 입에 올리는 것마저 두렵고, 책에서 가상으로 접했을 때마저도 마음이 쿵 가라앉는다. 더이상 그려볼 수 없는 삶이 가슴아프고, 그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과, 일상은 잠시 멈추어주지 않고 계속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시간의 법칙에 더욱 아프다. 이 생각에 매여 두려워만 하는 내 마음이, 버겁다.

 

 

2009.3.19.. 자격지심

며칠 전 잠을 못 자고 내내 부스럭거리다 밤을 꼬박 샌 적이 있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잠을 자지 못하거나 훌쩍거리거나 둘 중 하나.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그 시간들이 넌 아직 괜찮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 같고, 안 괜찮다고 하기엔 나는 일상을 너무 잘 보내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할 수 있겠지. 꾹꾹 눌러놓은 마음만 '평소'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다면 말이다.

뒤척이며 방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다가 책장에서 예전 일기장을 찾았다. 대학 1학년 3월 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울면서 쓴 첫 번째 일기부터 시작해 2학년 때까지의 생각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그 시간들을 난 참 많이 버거워했다. 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무게가, 시간으로 인한 감각들이 되살아나서 힘들었다. 지금 이 흔적은 훗날 또 어떤 무게로, 어떤 느낌으로 읽힐까.

지극히 사소한 일로 시작된 고민들은 결국 이 자리에 내가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고 있다. 훨씬 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왔다면 많이 달랐을텐데, 와 같은 옹졸한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무얼 잘 할 수 있나 싶어 울적해지고 만다. 그러나 나는 또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 자리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채근할 테다. 어디서든 끊임없이 자격과 역량을 의심하는 나라면, 이 자리에서 내가 그러는 것도 당연하겠지. 조금 위안이 된다.

잘할 수 있을 거야, 가 아니라, 나는 잘해야만 한다. 이것 역시 나를 옥죄는 생각일까.

 

2009.4.10. . 불면증

티셔츠 기장 줄이기를 금방 끝냈다. 요 몇 주째 며칠 간격으로 자기 전 손바느질을 두어 시간 하고 있다. 불면증이라고 해야 할지 좀체 들지 않는 잠 때문에 환장할 노릇이어서, 책도 읽어보고(읽을수록 말똥거리고), 라디오와 시디도 들어보고(역시 말똥거리긴 마찬가지), 인터넷 블로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뻘짓거리도 해 보고(그러다가 해 떠서야 잠든 뒤론 다시는 안 하기로), 단순반복적인 고전게임도 다운받아 해 보고(게임은 금세 싫증이 나서 십 분도 못 하고 끝), 올해 이상문학상 소설에선 불면증을 이겨내려고 산책을 하던데 새벽 두 시에 집 밖을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수선집에 가기 귀찮아서 내가 옷을 줄여볼까 하는 요량으로 시작한 손바느질이 요즘은 꽤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청바지 한 쪽 밑단을 잘라서 원래 모습으로 바느질 하는 데에 한 시간이나 걸려서(그것도 겨우 한 쪽이) 이 지루한 짓을 얼른 끝내고 자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솟는다.

청바지 1은 길이를 알맞게 줄여서 잘 입고 있고, 청바지 2는 복숭아뼈가 보일락 말락 해서 깡똥한 길이를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입을 바지가 없을 때 한 번씩 입고 있고, 청바지 3은 부츠컷인데 일자로 통을 줄여보겠다고 설쳤다가 종아리만 스키니가 되어버려 입지도 못하며, 청바지 4는 통바지인데 어떻게 바느질을 했는지 바지가 꽈배기모양으로 다리에 뱅뱅 감겨서 역시 망쳐버렸다. 진베이지 면바지는 연베이지 실로 밑단을 꿰맸다가 길이도 깡똥하고 흰실만 돋보이는 것을 억지로 입고 있고, 롱티셔츠 1은 길이를 너무 줄여버려서 이것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난감해 잠시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박아둔 지 오래며, 금방 길이를 줄인 롱티셔츠 2는 삐뚤삐뚤한 밑단 박음질을 누가 신경쓰겠어 하는 자신감만 있으면 입을 만할 것 같다. 잠을 불러오는 내 바느질 역사는 이렇다. 이러다가 입을 수 있는 옷들마저 다 사지로 보내버릴 것만 같다.

오늘은 바느질을 끝내고도 마음이 무겁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물론 원치 않았겠지만) 너희들의 어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자신을 방관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내 마음을, 상황이 변할 거란 기대는 이루어지기 어렵고 네 영역을 네가 변화시키며 지켜야만 하는 것이 사실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은 냉정한 마음을, 너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욕심일 테다. 그렇지만 내가 거쳐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해야만 한다고, 마음을 묶어두지만 말고 너희들 앞에 풀어헤쳐두고 싶기만 하다.

내 잠을 모두 가져가도 좋으니, 너희들이 보다 강해졌으면 좋겠다.

 

2009.6.11.. 지원이

문자를 받고 두 달 만에 연락을 했으니 말 다 했지, 친구는 제주도 내려가면 멱살 잡힐 줄 알라며 각오하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런가 별별 생각을 다 했다는, 고맙고도 너무 미안한 지원이. 마귀할멈에 괴팍한 선생 소리를 듣고 있다는 나를, violent였으니까 당연하지- 별다른 반응 없이 십분 이해하는 친구다. 친구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었다는 말을 잘못 이해해서 집에 뭘 보낼 때 제주도 서귀포특별자치시라고 주소를 적었다가 아버지께 된통 혼났다며 통화가 끝날 때까지 큰 웃음을 선사했다.

입에 올리면, 귀로 들으면 싱긋싱긋 웃음이 나는 그 많은 이름들이 기억 속에 묻혀 있었을 만큼 흐른, 오랜 시간들. 다리가 되어 줄 거라 믿었던 그 시간들이 섬으로 변하고 있었다. 섬이 아니어도, 섬이 되었다고 믿어 버렸다. 시간이 두렵다. 헤어짐이 두렵다. 두려움 앞에 지레 겁먹고 숨어버리는 스스로가 두렵다.

오늘은 별 일이 없구나 하는 문장을 마음 속에서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안일한 태도를 반성하라는 듯 일 하나가 터졌다. 매일매일이 능력부족을 절감하는 날이다. 또 다른,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09.7.12..

은경이, 민아언니, 민희언니랑 탑동에서 많은 이야길 나누고-.

이렇게 반갑고 좋은 친구들과 오래오래 마주하고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도 컸고, 붙인 정을 잃어버릴까 두렵기도 해서, 난 참 마음을 많이 닫고 살았던 것 같다. 많지 않은 추억에 그렇게 안타까워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마음 열고, 의지하고, 응석도 부리고, 많이 웃으며 지냈을 텐데.

거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난, 이제 함께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점점 잃을 것만 같았다. 난 왜 이렇게 겁만 많을까.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하는 친구들의 모습만으로도 힘이 많이 났다. 나도 내 자리에서 성실히, 다시 또다른 모습을 꿈꾸겠다.

 

 

2009.7.29..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한 세 달 정도 고민했었다. 하이킹을 다녀 온 뒤엔 힘들어서 좀 잠잠해졌다 싶더니 다시 며칠째 온종일 생각이 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산 자전거인데도 고산동산을 올라올 땐 정말 내팽개치고 싶었다. 아라동까지 반은 타고 반은 걷고 올라온 것 같다. 혹시나 누가 가져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니 참, 변덕이 끝이 없다.

이번 주는 아이들을 느슨하게 해 주기로 해서 자습도 안 시키고 보고 싶다는 영화도 틀어주었더니 좋다고 잘 논다. 덩달아 잔소리 안 하고 마찰 없이 정답게 며칠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참 좋았다. 다음 주면 난 다시 마귀할멈이 되어 버리고 말까. 마냥 아이들을 편하고 즐겁게만 해 줄 수 없는 게, 언제나 딜레마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역시 없다는 것도 함께 느낀다. 원치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역시. 지치지 말아야 하는데.

 

2009.9.7..

잠이 오지 않던 간밤에, 누워서 몽글몽글한 생각들을 끌어모으다가 네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네 말도 생각나고, 널 얘기하던 다른 이들의 말들도 생각나고, 널 썼던 지난 일기들도 생각나고, 널 생각나게 하던 다른 글들도 생각나고, 겨우 언어일 뿐이었는데.

어린왕자 속 여우는 '슬픔은 가시는 거니까'라고 해서, 맞는 말이야, 그렇게 될 거야, 그 말을 또 오래 마음에 잡아두었는데 배수아의 소설에서는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다시 아프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 역시 맞았다. 말을 품지 않았다면 더 좋을 뻔했다.

너로 인해 두려워진 게 참 많아져서 솔직히 네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원망스런 마음도 어쩌면, 그리운 마음이, 후회하는 마음이, 미안한 마음이 다르게 표출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9.9.29.. 걱정

생각해 보니 효렬아, 내가 만나는 친구들이 네 또래가 되겠더라. 너와 같은 나이, 너보다 한 살, 두 살 위 형들. 내게 너는 커다란 자전거 앞에 영락없이 작기만 한 꼬마인데, 생각해 보니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어.

생각해 보면, 내 동생과 같은 아이들인데 선생님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복지사라고도 할 수 없는 어줍잖은 역할만을 가지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엉터리 짓만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뭘까, 내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좀더 일찍 개입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참 많이 들고, 또 그렇지만 자꾸만 멀어지는 걸 어쩔 수 없지 않았나 갑갑하기도 하고, 내 탓이겠지 무력감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이 참 그래. 그래도 우리들의 탓이 큰 거겠지, 그렇겠지, 효렬아.

네가 만약 그랬다면 누난 어떻게 했을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어쩌면, 누나나 언니가 아닐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많을테니 말야.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 주위에 참 많을 텐데, 공감하고 품어주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곱씹으면서도 하지만 그래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또다른 생각들이 밀려들어. 누난 정말, 지루하고 고루한 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아.

효렬아, 누나가 우리 효렬이만큼이나 아끼는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빌어 줘.

 

 

2009.11.17.. 발레교습소

간밤에 지독하게도 잠이 안 와서 '발레교습소'를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꼭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한창 나왔을 때는 윤계상이 나와서, 연예인들은 위치만으로도 (실력의 유무를 떠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서, 실망스러울까봐 보지 않았었다. 윤계상의 연기는 거꾸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드라마 트리플을 보면서 어, 괜찮네 생각했었고, 얼마 전 본 집행자는 영화 자체가 정말 좋았고, 이 영화에서의 그를 보니,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겠다.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보다도, 이렇게 성장하는 사람의 매력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내게는,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을까. 그게 부럽기도 해서. )

제주대학교 촬영분도 나오는데, 학교 건물 옥상에서 바다까지 뻗은 제대 풍경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보고, 저건 분명 도서관 옥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도서관과 같은 선에 있는 건물이거나. (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꼭 그랬다.) 내가 걸었던 길, 내가 보았던 풍경이 반가웠다.

엉뚱하게도 캐치볼 장면에서 울컥했다. AA'의 관계에 흐르는 믿음과 무언의 소통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부러웠고, 그렇지만 나는 BB'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AB'의 관계마저도, 이해해야 하는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서러워졌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러고 있는 나는, 이해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2009.11.20..

한 달에 한 번, 두 번, 그렇게 밀려드는 생각들 때문에 잠을 설쳤었는데, 이제는 걱정스러워질만큼 그 주기가 짧아진다. 요사이 거의 네 시에 맞물려 잠이 든 것 같다.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꿈뻑꿈뻑 눈이 감겨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머릿속 구석구석 퍼져있는 신경들이 살아난다. 어둠 속에서 별별 생각들이 몰캉몰캉 씹혀서 또 두어 시간을 보낸다. 생각치도 않았던 창피스런 기억, 그날 하루 했던 말들, 누군가의 이야기, 상처,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책 속 구절, 영화의 한 장면, 그렇게. 인과관계도 없이. 포개지는 기억의 단면들. 두뇌를 잠시 내 몸 옆에 꺼내두고 잘 수는 없을까 싶을 만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밤새 머리를 콩콩 찧어가면서라도 잠들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단면들이 장편처럼 끝없이 이어질 때마다 그 시간들이 괴롭다. 왜 이럴까.

생각으로 괴로운 다른 밤들과는 다르게, 금요일 밤은 조금은 달뜬 마음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도 출근을 하는 나는 금요일이라도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무언가, 좀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 그렇다고 해서, 지난 금요일들을 돌이켜 보면 별달리 보낸 적은 또 없는 듯하다.

어쨌든, 오늘은 그제 사온 책을 읽고 있다.

정한아. 첫 소설인 '달의 바다'의 발상과, 그 속 인물들의 마음과, 흡입력과, 아끼고픈 마음이 드는 작가의 말이 좋아서 첫인상이 좋게 자리잡은 소설가이다. '나를 위해 웃다'는 한참 전부터 서점에서 봤었는데도, 머뭇거려져서 들었다가도 결국 다시 내려놓고 오곤 했었다. 참 좋았다는 서평 하나를 얼마 전 읽고선 안심이 되어 반갑게 들고 왔다. 의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조심스럽다고 해야 할까, 소심하다고 해야 할까, 좀스럽다고 해야 할까. 짤막한 글 하나에 이렇게나 맘을 놓아버리는 내가.

잘 읽다가 흠칫 놀라 책을 내려놔 버렸다. 글이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눈물이 났지만 잘 참았다. 사실 조금 흘려버리기도 했지만, 오늘은 금요일 밤이니까, 잘 참았다. 틀어두고 있었던 전람회의 이방인 탓이라고, 그 영향이 컸기도 했다고 그렇게 이유를 돌리기로 했다. 어쨌든, 책을 완전히 덮어버리지 않고 어중간하게 덮는 둥 마는 둥 시옷자로 바닥에 세워둔 나는, 결국은 조금 있다 이 책을 다시 펼쳐들 것을 안다.

허기를 채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건강하든 다소 아프든, 허기지고 갈급해지는 때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무언가를 하면 된다는 방법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다행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크든 작든 성취에 대한 지지가 힘이 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와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엉긴 마음을 푸는 사람도 있고, 사랑으로 그 마음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성과에 대한 인정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도 있고, 술로 달래기도 하고, 깊은 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운 영화를 보며 크게 웃기도 하고, 일에 몰두하고, 음악에 미치고, 책에 미치고, 글에 미치고, 영화에 미치고, 무작정 걷기도 하고, 뭔가를 먹기도 하고, 그 외에도, 저마다의 방법은 무수하겠지.

나는 내 허기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싶어서, 달랜답시고 끄적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지독하게 몰두하는 것도 아니어서, 무엇 하나 몰두하는 게 있나 싶어서, 그래서 다행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생각이 많으면 문장이 엉킨다. 거친 글이 부끄럽고, 사실 글보다도, 거친 생각이 더 부끄럽다.

한 시를 넘겼다. 불을 끄면 또 밀려들 생각이 싫어 졸음이 눈에 붙을 때까지 글자든 소리든 무엇이든 머릿속에 계속 밀어넣지만, 이것들이 내 숙면을 방해한다는 것도 알고, 그렇지만 어둠 또한 숙면을 방해할까봐 걱정돼서, 앉느냐 눕느냐 무엇이 좋을지 모르겠다. 잠에 있어서까지 망설일 필요는 없는데도.

 

2009.11.23..

밥상을 책상으로 쓰고 있는데, 높이가 낮다보니 금세 어깨가 아파져서 스르륵 자세는 허물어지고, 결국은 거의 반은 누운 채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읽곤 한다. 매일 이렇게 요상한 자세로 있으니까 어깨와 목이 멀쩡할 턱이 없지. 조그만 탁자와 나무의자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고 방을 둘러보니, 삼년 전 나는 허리만큼 오는 여행가방 하나로 자취생활을 시작했었다는 게 무색해졌다. 지금은 플라스틱수납장 세 개, 책장으로 쓰는 공간박스 열한 개, 행거 하나, 잡동사니선반 하나, 박스 다섯, 선풍기히터에 진짜 선풍기에, 전기매트에, 이불 둘, 베개 둘, 노트북, 프린터, 심지어 다리미판과 등받이 대형베개까지 살림살이가 늘어나 버렸다.(여기에 방안에 들여놓지 못하는 것들까지 합친다면. 아휴.) 필요성의 유무와 중요도에 따라 배열한다면 이 중 절실한 것들은 얼마나 될까. 방은 좁은데 배열을 바꾸면 넓어보일까 싶어서 방을 여러 번 뒤엎으면서도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짜증이 났던 적도 있었다. 조금의 불편함만 계속 감수했었더라면 굳이 없어도 될 만한 것들이 많을 텐데. 특히 세로로 놓으면 일인용 매트를 사람처럼 차지해 버리는 커다란 베개. 그냥 벽에 기대도 됐을 텐데, 더 게을러졌다.

살면 살수록 꾸역꾸역, 욕심만 더 느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내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주로 노래를 들으려고 검색창을 통해 여러 블로그들을 기웃거리게 되는데, 노래 한 곡을 듣고 나면 다른 포스트들도 몇 개 클릭해 보게 되고, 그렇게 들락날락하다보면 생각보다 세상에 방황하는 존재가 많은 것 같아서 위안을 받는다. 이거, 그렇게 다행스러운 위안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요즘은 언니네이발관 노래를 많이 듣는다. 몇 년 전에 '순간을 믿어요' 한 곡만 줄창 듣고 밴드 이름이 재밌네, 그렇게 어느 순간 흘려버렸었는데 웹에서 사람들이 5집 칭송을 하도 많이 하길래 이것저것 찾아서 듣다 보니 무척 좋아졌다. 사실 그렇게 노래를 찾아듣는 수고를 기꺼이 즐거워하게 된 건, 이 밴드의 보컬이 라디오방송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밴드를 자기 밴드라며 소개한 뒤 나중에야 온라인동호회를 통해 결성했다는, 기막힌 후일담 덕이었다. 그 후일담 덕에 또 나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이적의 소설집도 루시드폴의 책도 사지 않았는데, 하물며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기도 서점에서 집었다가 또 머뭇거려져서 내려놓아버렸는데,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이석원이라는 사람의 얼굴도 밴드에서 맡은 역할도 모르면서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과 오직 글로만 꽉 차 있는 내용과 군더더기 없는 노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덜컥 산문집을 사 버렸다. 언니네이발관의 앨범도 한 장 없으면서. (노래를 찾아 듣다가, 이 사람의 얼굴도, 보컬이라는 사실도 조금 전에야 동영상을 보고 알았다.)

정한아의 소설을 다시 읽고 있어서 아직 이 책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멋스런 말을 하는 것보다, 인간은 가장 보통의 존재라며 이런, 큰일이다- 노래하는 소박한 울림이 더욱 위안이 되어, 책 역시 위안이 되어주리라는 기대가 크다. 내게 있어서 책과 노래와 영화는 모두 위안의 한 방법으로 삶과 얽혀 있다고 해야 할까.

+결국 5집도 샀다. 몇 집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가게에 '꿈의 팝송'도 있는 바람에 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내가 더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사람들의 음반도 별로 없는데. 나 좀 이상한 것 같다. . 나는 이상해도, 노래들은 참 좋다.

장기하를 비롯하여 요즘의 인디음악은 왜 이렇게 마이너적인 감성을 노래하냐는 비판에 이들의 노래 역시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다는 커다란(혹은 막연한) 희망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 생각이 자꾸 회의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포부 없는 젊은이들을 나무라신다면 당신들은 어떤 역할을 하셨는가 되묻고 싶기도 하고. 젊은 시절의 불안감을 정말 모르시냐고(경험해보지 않으셨냐고) 묻고 싶기도 하고. 내가 너무 꼬인 생각을 하나 싶기도 하고. 마이너적인 감성이 느껴진다고 해서, 그들을, 젊은이들을, 마이너라고 규정지어선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고. 이게 무슨 말이람.

 

2009.11.29.. 두번째달

오늘은 일이 있어서 종일 나와 있었지만, 일이었어도 밖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즐거웠다. 잠에 취해서 기절한 사람마냥 방에 묻혀 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니 나 살아있구나 그런 느낌이 든달까. 해가 떨어지기 전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한참 걷다가, 차 마시며 책도 읽다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전부터 사고 싶던 CD를 사려고 레코드점에 갔다. 레코드점에서 가나다 순으로 앨범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는데 주인 한 사람, 그리고 손님은 나 한 사람, 이렇게 서로 조용히 움직이고 있어서 쑥쓰러웠다. 사실 레코드점에서 직접 음반을 사 본 게 이번이 두 번째이기도 해서, 내 돈 주고 사면서도 괜히 쑥쓰러운 게 이상했다.

두번째달 monolog project 'Alice in neverland'. 요즘은 두번째달에서 프로젝트로 두 갈래로 나뉘어,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밴드와 아일랜드 음악을 구심점으로 삼는 Irish trad. project 'Bard'로 활동한다고 한다. 분화돼서 그런지 첫 앨범에서 느낀 낯설면서도 신비한 이국마을 분위기는 좀더 줄어들었다. 대신 몽환적인 색채가 좀더 짙어지고 곡마다의 비중이 비슷해졌다. 좀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도 많고. 각 앨범마다 색이 뚜렷해서 좋다. 아직은 듣지 못한 Bard의 음악도 기대된다.

만약 세상에 달이 두 개가 있었다면 이분법적인 편협함에서 보다 자유로워졌을 것이라는 모토에 매료되어 두번째달을 좋아하게 되었다. 참 좋아했던 드라마 아일랜드의 영향도 컸고. 아일랜드 음악은 슬프고 또 경쾌하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음악을 들을 때의 몇 가지 버릇.

우선 무언가를 하며 배경음악처럼 들을 때가 많다 보니 어느샌가 좋아하는 가수나 밴드 등의 색이 비슷해졌다. 특히 문서작업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바느질을 할 때, 깊은 밤에, 등등 듣곤 해서 좋아하는 곡들 다수가 자정이 지난 라디오방송에서 나올 법한 곡들이다. (경쾌한 곡들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닌데, 노래를 선택하는 배경이 그렇다 보니.)

, 인트로만 듣고 곡 제목을 맞힐 때 굉장히 뿌듯해한다. 그래서 인트로에 굉장히 집중해서 듣는다.

그리고 음악의 세션을 하나하나 듣길 좋아한다. 보컬 소리가 익숙해지면 다음은 피아노라든가, 기타라든가, 드럼이라든가, 신디라든가, 하모니카라든가, 한 소리에 집중하면서 여러 번.

, 그리고 열린음악회 마지막 곡처럼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부른 곡을 좋아한다. 처음부터 합창인 곡이 아니라 각자의 파트에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또 합창에서는 한데 어우러진 그런 곡이 좋다. '버터플라이', '같은 맘으로', '그녀를 잡아요', '하나되어' 같이. 같은 이유의 연장선에서, 듀엣곡도 좋아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모여 듀엣을 하거나 피처링을 한 곡을 더 좋아한다.

그러저러한 이유를 다시 바탕으로 삼아 두번째달이 참 좋은 이유는, 무언가를 하면서 같이 듣기 좋고,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고, 독특한 악기소리가 좋고, 아이리쉬 풍의 곡들이 좋고, 여러 악기가 고르게 어우러진 소리가 좋고, 무엇보다도 이들이 품은 섬세한 마음이 좋다. 또다른 달이 되어 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비추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따뜻하게, 음악으로 전해온다.

 

2009.12.27..

한 해가 지나면 두어 계단 정도는 올라설 수 있을 줄 알았다. 해를 넘기고 있는데 여전히 난 어수룩하기만 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기분이다. 경험이 디딤돌이 되어주길 바랐는데, 어리석게도 난 움츠러들어버렸다. 조급해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 기분은 조급함이 아니라, 뭐랄까, 쓸쓸하다고 해야 할까. 한 해를 보내지도 못하고 마음만 동여맨 채, 다가올 해가 두렵다.

말과 말이 지나가는 그 사이에서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쓸쓸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과 다르게 나는 엇나갔나 보다. 마음이 조금 아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너무 민감하기 때문일까, 마음을 느슨히 풀어두질 못하겠다.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도, 쓸쓸한 사람이 되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 때문이겠지.

지금보다 조금은 가볍게, 해를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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