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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고/지난, 2005~2015

2008년

늠름 2016.11.24 20:19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


2008년



2008.1.7..

마음이 아리는 날이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하는 내 모습에 흠칫했다. 이 낯가림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나는 앞으로 많은 일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경계, 불신, 회피, 여기에서 오해가 비롯되고 관계가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가끔 극도로 예민해지는 자신을 감지할 때 수치심을 느낀다.

집에 잠깐 들렀다. 이제는. 그래. 나를 증명할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기분이다. 무게가 쿵 내려앉았다. 그 작은 칸을 채울 숫자 몇 개를 잃는다는 게 이렇게 마음을 참담하게 만들 줄 몰랐다.

수능 이후로 처음 펼치는 영어사전에서 반송된 편지를 발견했다. 기대와 두려움과 초조함과 조바심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보낸 편지였지만 이내 내게 되돌아 온 편지였다. 뜯어보지 말 것을 그랬다. 반송된 편지를 받았을 때 뜯어보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처박아 둔 것도 오늘 느낀 이 기분이 두려워서였을텐데. 알면서도.

꿈을 꾼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맥이 많이 풀렸다. 꿈이란 말에, 희망이란 말에, 가슴이 벅차지도 않았고 설레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나 둘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렵고 서글퍼졌다. 다만 조금 지쳤을 뿐이고, 다만 너무 오래 끌었을 뿐이고, 다만 그늘이 드리워졌을 뿐, 그뿐이다. 윤동주 시인이 그랬다. 담 저쪽엔 내가 남아 있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고. 어느 곳에나 길은 있다. 그리고 그 길엔 이미 내가 먼저 걷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를 가만가만 따를 뿐이다.

지금 내 바람은, 설렘을, 잃지 않는 것.

 

2008.1.8..

집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가져왔다. 울컥 눈물이 치솟을 때 이 책을 꺼내 읽으면 마음이 잠잠해졌었다. 영화도 여러 번, 책도 십수 번 읽었지만, 젊은이들의 꿈은 아름답고, 키팅 선생님은 존경스러우며, 닐의 죽음은 언제나 슬프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깜박 졸고, 시간을 놓치고, 허비한 시간에 정신없이 움직이고, 그렇게 다시 고민하고 그러길 며칠째. 일하러 왔더니 어지럽고 속이 너무 아파서 낑낑대다가 두어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다. 엄살이었나. 죽은듯이 지내다가 어제 그제 에너지를 갑자기 소비했더니 몸이 영 말을 안 들어서 잘 하던 일들도 꽤 헤멨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난 제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자꾸 뒤로만 비켜서고 있네. 이렇게 가까웠구나, 현실은.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미안함과 죄책감을 따지자면 숨이 막힐 지경이지. 정말 미안해요.

 

2008.1.16..

교육분과장도, 소설창비반장도, 동행 부회장도 모두 끝났다(끝나간다). 사람을 이끄는 자리.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한 번씩은 그런 자리를 경험했는데 임기를 끝내고 느끼는 마음은 언제나 불편했다. 완벽, 완벽, 이것을 추구하다 보면 스스로 만족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싶으면서도, 항상 내가 부딪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것.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보다도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느낌을 늘 지울 수가 없었다. 작년의 나도 그랬다. 하는 동안에도 마음이 많이 어려웠고 지금 느끼는 마음 역시.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불안하고, 불안함을 억누르고 그 위치에 있다 내려오면 역시나 또 실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후회스럽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기에는 똥고집이고, 마음을 이끄는 사람이 되기에는 용기와 친화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자꾸만 혼자 서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외로워진다.

아토피는 두피까지 올라오고 오른손은 올겨울 들어 가장 심하게 텄다. 자다가 깨니 터진 손을 움켜쥐지도 펼 수도 없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전에는 연고 없이도 잘 참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하얗게 묻어날 만큼 연고를 바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다. 이제는 연고가 필요해졌구나. 연고가 필요한 나이구나. 받았든 만들었든 상처가 생기고 나면 혼자서 스스로 아물기만을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많이 부족해졌구나. 가끔 이 손 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질 때, 참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2008.1.18..

어젠 정말 죽은듯이 자 버렸다. 아침 열한 시에 잠든 게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일어나다니. 월화수에 공부방 수업이 몰려 있는 게 부담되긴 한데 바꿀 타이밍을 놓쳤다. 제 시간에 못 일어나서 자꾸 수업에 지각하는 것도 미안하고, 창피하고. 잠 때문에 민폐를 끼치다니. 한계는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지 못하고 일을 벌려 놓기. 그리고 많은 허점 보이기. 그래서 실망하기. 이거 너무 창피하잖아. 신민이에게 잠을 자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물었더니 요녀석 내가 언젠가 자기한테 해 줬던 말을 그대로 내게 하면서 잘난척 하는 표정을 짓는다. 웃기네, 하고 톡 때려줬지만 기특했다. 아이들에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참 미련스럽게 굴고 있구나.

오늘은 라디오에서 고호경의 노래가 두 번 나왔다. 예쁜 얼굴에, 예쁜 나이에, 예쁜 목소리를 가졌으면서. 약에 취해야 할 만큼 그렇게 삶을 견디기가 힘들었을까. 유선방송에서 드라마 아일랜드를 재방송하길래 아침에 첫 회를 봤다. 아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는 또다른 아픈 사람들,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사람들,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참 많은 것 같다.

열한 시 반부터 걸어가기 시작해서 열두 시 쯤 편의점에 도착한 뒤 정산하고 유통기한 점검하면 대충 열두 시 반 정도. 그때부터 세시 반까진 손님 받고 책 읽고 담배 채우고, 세 시 반에 분리수거해서 쓰레기 버리고 오면 네 시. 음식물 쓰레기통 씻고, 바닥 청소하고, 점포 앞 쓸고, 먼지 닦고, 매대 채우다 보면 다섯 시에서 다섯 시 반 정도. 담배랑 서비스 상품 재고 조사하면 여섯 시. 정문 유리 닦고 남은 시간 동안 책 읽다가 일곱 시 십 분 쯤 센터 차 오면 물건 검수하고 진열하고 한 번 더 매대 채우고 시재점검하면 여덟 시 반 퇴근. 걸어 올라가면 아홉 시. 야간이라 별로 할 일 없겠지 생각했는데 은근히 일이 많다. 거기에 나는 행동이 굼떠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틈날 때 따뜻한 커피 마시면서, 가끔 과자 곁들여 주고, 노래 들으며 일기도 쓰고, 이런 저런 생각하고 있으면 이 일도 꽤 괜찮다. 점포도 작고, 혼자 일하고,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있고, 로또 없으니 그나마 편하고, 약간의 무서움과 수면부족만 빼면.

생각이 너무 많으면 고루해진다는 공자님 말씀 하나도 틀릴 게 없다. 벌써 1월 중순이 지났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공부해야지 생각하니 불안하고 더 해이해져서 막무가내로 토익책을 샀다. . 이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거야. 우선, 뭐든지 시작하자. 너무 오래 숨어 있었다.

 

2008.1.21..

등이 너무 시렸다. 너무 시려서 계속 웅크리고만 있었다.

혼자 겁나서, 혼자 슬퍼서, 혼자 속상해서, 꼭꼭 숨었다.

집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하다가 너무 슬퍼서 울다가 잠들었다. 울다 잠든 게 오랜만이었다. 나쁘진, 않았다. 그곳이 나를 울릴 만큼 소중한 곳이었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빗물에 눅눅해진 바지 밑단처럼 질질 끌리고 발에 질근질근 밟히는 기분이다. 뭐든, 어서 끝나든지, 어서 시작하든지, 뭐든, 좀 지금과는 다르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2008.1.29..

머리도 풀고, 반짝이 띠 두른 브이넥 니트 입고, 구두 신고. 나름 아가씨 티 낸댔다가 집에 오자마자 다 갈아입었다. 제일 만만한 후드티와 만만한 청바지. 옆구리 다 터진 운동화. 일하러 갈 땐 편한 차림이 제일이다. 가장 만만하지만 가장 편안함을 주는 것. 이래서 내가 이 운동화를 버릴 수가 없다. 면티와 청바지와 낡은 운동화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머린 돌돌 말아버리지 않으면 잔머리들이 하늘로 솟구쳐 버린다. 내 또래 친구들처럼 나도 아가씨가 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욕심은 있어서 종종 각 잡힌 옷에 구두를 신어 보지만, 참 어색하기만 하다.

언제나 지고 말 거면서 일하러 가기 싫다고 나 자신과는 왜 싸우는지. 열한 시 이십오 분까지 낑낑대다가 삼십 분이 넘어서야 부랴부랴 나왔다. 찬바람 맞으며 정신없이 걷다 보니까 아, 살 것 같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을 마주하며 열심히 걷기에만 충실하다보면 좀머 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엔 부랴부랴 걸어와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열이 안 내리는 걸 보니 역시나, 잠 못 잔 게 티가 난다. 잠을 못 자면 퀭한 두 눈과 더불어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좀처럼 열이 식지 않는다. 피곤한 티 안 내려 해도 얼굴에 나 졸려요 글자가 큼지막하게 써 있나 보다.

손님 한 분이 많이 피곤하냐고 친절하게 물어봐 주신다. 한 시간 전에는 경찰서에 전화하라며 마구 소리지르던 취객 하나. 인내심을 바닥까지 시험하는 손님과 내가 대신 물건 값을 치르고픈 손님. 극과 극, 그리고 그 경계와 중간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만 봐도 이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체감할 수 있다.

아름드리에서 청자로 책들을 옮기는 것을 돕다가 오정희와 전혜린의 산문집을 발견하고 빌려왔다. 오정희의 소설은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글을 읽었을 때의 놀라움. 그 인식. 그리고 전혜린은...... 수능을 공부하며 수필을 읽었을 때, 삶의 의지를 강하게 보이는 그녀의 글을 읽고 한창 혼란스러웠던 난 눈물까지 흘렸다. 그렇지만 얼마 뒤 그녀가 스스로 삶을 거부했다는 것을 알고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또 울었다.(이거, 당시 문제집에서 자살이라고 해설을 달아서 오해하고는 배신감을 느꼈다. 실제로는 그냥 발견된 것인데.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난 그녀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선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그 다음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공감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2008.2.2..

나는, 어른을 품은 아이일까. 아이를 품은 어른일까.

나는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를 좋아하고 그에 못지않게 과자를 좋아하고 달콤한 초콜릿을 참 좋아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여전히 찔끔찔끔 잘 운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릴 때 지독히 싫어했던 양파에 반해 양파맛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며 한 이틀 못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면 아, 살 것 같다라고 느끼는 커피 중독자가 되었다. 프림이 기름 덩어리라는 것을 안 뒤로부턴 프림 뺀 커피를 의식적으로 찾으면서 어느날부턴가 건강을 조금씩 걱정하고 있다. 터질 것 같은 눈물샘을 남들 앞에서 조이는 방법을 터득했고 삶에 대해 몇 시간씩 상념에 빠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헷갈린다. 어쨌든 매순간마다 그 순간에 걸맞는 나이만큼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시기를 나는 너무 빨리 겪었거나 놓쳐버려서 뒤늦게야 겪고 있거나 아니면 일부러 피해 다니고 있거나 그 중 하나.

스물두 해 째 발자국을 찍어오는 동안 이건 정말 최악이야, 라고 느낀 순간이 여러 차례였다. 내가 이 한 순간을 최악이라고 생각할 때 적어도 그 순간 이후 닥칠 나날들은 그 순간만큼의 최악이 아닐 것이며, 또한 그 순간이 아닌 앞날의 어느 한 순간에 다시 최악이라고 느꼈을 때에 과거에 내가 최악이라고 느꼈던 순간은 사실 최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삶에서 최악이라는 것은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최악이라고 느꼈던 그 시간들도 완전한 바닥은 아니었을 것이고 삶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내 삶에서 밑바닥에 가라앉는 순간은 영원히 맞닥뜨리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2008.2.4..

'기억 찾기'의 경우, 20대의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여자 이야기를 그리면서 시대 상황을 외면하지 않은 점은 좋았다. 그러나 지문, 대화문 구분 없이 써서 집중력이 떨어졌고, 삽입된 에피소드가 주제와 밀착되지 않고 겉돌았다.

(……)

세 작품 모두 문장을 정확하게 쓰기, 의미 없는 문장 배제하기, 자기만의 개성을 갖기 등이 요구된다. 삶에 대한 치열한 인식도 필요하다. 작품을 쓰고 응모했다는 것은 이미 소설 쓰기의 절반은 달성된 것임을 의미한다. 앞으로 소설에 애정을 갖고 계속 정진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이명인, 김동윤.

제주작가 제19, 2007 하반기, 제주작가회의

2007년 제주작가 신인상에서 소설 부문 수상작은 없었다. 진철 쌤이 읽어보라고 책을 주고 가셨는데 심사평을 읽어보라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은 책을 받고 몇 시간이 지나서 편의점에 와서 책을 펼치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다. 소설 부문 심사평에서 제일 먼저 '기억 찾기'란 제목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책을 덮었다가, 손님 한 분 계산 마치고 다시 책을 펼쳤다. 이명인 소설가, 김동윤 교수님은 백록문학상 때도 심사해 주셨던 분들이다. 거기에다 나는 김동윤 교수님의 강의를 두 번 받았었고 강의 하나는 신청했다가 변경 기간에 취소해버린 전적도 있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그곳 회원이신 걸 알았으면서도 왜 교수님이 심사하실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부끄럽다를 넘어서 사실 창피하다.

볼 사람도 없는데 혼자 조심스럽게 읽으면서 철도 없이 '-은 좋았다'라는, '-'이라는 차이보조사가 달려 있음에도 좋았다,라는 그 말이 있어 기분이 실은 살짝 들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 그러나의 칼에 찔려야 하는 것이다.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지만, 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들의 영웅들과 우상들이 행했던 것처럼 '당신을 능가하겠소'라는 도전 정신은 하나도 없고 자꾸만 위축되던 중이었다. 작아지고 작아지던 중에 인쇄된 그 세 줄이 자극이 되었다. 그래도 쪽팔리게 그저 부려 본 객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치열하게, 용기 있게, 진솔하게, 그렇게 다시. 하면 돼.

 


2008.2.8..

어제 일을 마치고 작은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차례가 막 끝나려던 참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나는 많이 혼났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전에 욕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랜만에 친척들 틈새에 끼는 건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행이었다.

멀리 사는 친척들은 제가 끝나자 모두 가고, 작은 할머니 댁 식구들과 고모, 아이들과 모여서 과일과 떡을 먹는데 작은 할아버지께서 뜬금없이 "아름인 사시미 떵 먹어야 맛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난 기름떡을 물려던 입을 다물지 못했고, "아름이가 생선이꽈"하며 이어진 고모의 말, 친척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뇌출혈로 몇 년 전 쓰러지신 뒤로 작은 할아버지는 어린아이 같아지셨다. 옆에서 아름아, 아름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뭔가 말을 하려다가 두 마디의 말이 서로 엉켜서 나온 듯했다. 2008년의 설날, 나는 덕담은 듣지 못하고 작은 할아버지의 엉뚱한 말 덕분에 사시미가 되고 말았다.

나를 생각하면 애달파서 눈물이 자꾸 난다는 작은 할머니, 이렇게 통통한 얼굴인데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야위었냐며 밥 안 먹고 다닌다고 채근하시는 작은 이모할머니, 느릿한 말투로 가엾다고, 가엾다고 손으로 따뜻하게 쓸어주시는 남흘동 이모할머니, 뒤에서 언제나 챙겨주시는 작은 고모, 다들, 내가 뭐라고, 그렇게…….

할머니들의 눈엔 언제까지나 난 가엾은 아이로, 내가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보일 것이다. 앞으로 내가 순탄한 길을 벗어나 걸을수록 더욱 나를 보며 슬퍼하실 것이다.

지금보다 좀더 어릴 때는 그런 느낌이 참 싫었다. 나와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얼굴 가득 번지는, 안타깝다는 그 표정. 동네 이웃들의 쯧쯧 혀 차는 소리. 그럴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다. 나의 과거와, 나의 배경과, 나의 모든 것을 하나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 그런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땐 마음이 참 그랬다. 고마워야 할 마음들은 난 삐딱한 마음으로 응대했고 언제나 침묵했다.

그 시간의 틈새에서 난 조금 더 자란 것 같다. 지금은, 언제까지나 날 그런 아이로 보셔도 좋으니, 그대신 내가 좀더 강해지면 되니까, 내가 마을에 가면 언제나 찾아뵐 수 있는 그 자리에 한결같이 계셨으면 좋겠다. 오래된 나무처럼 언제나 그렇게. 언젠간 더이상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혹시나 갑자기 찾아오게 될까봐 생각하면 겁이 나지만, 지금처럼만 언제나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오늘과 내일은 휴일. 수첩에 목록으로 쭉 적어놓은, 지나간 노래들을 듣고, 지나간 영화들을 보고, 노래방에 가서 한 달 동안 후회 없을 만큼 실컷 노래 부르고, 편의점에서 매일 눈독 들이던 파란 맥주도 마셔보고, 아니면 김밥이나 빵으로 대충 도시락 챙겨서 디카와 책 한 권 가방에 담고 버스 타고 바다든, 낯선 마을이든 다녀오고, 그렇게 하루 보내고 싶은 게 매번 맞이하는 휴일의 로망인데 그마저도 게을러서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만 있다. 촌에 다녀오거나, 밀린 빨래나 청소 하면서 대충 쉬거나, 혼자 방에 박혀 멀뚱히 있거나. 쉽게 내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건 언제나 스스로를 무겁게 묶어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마음만 무거울 뿐이지 아무런 의무도 행하지 않고 그냥 있을 뿐이다. 그런 마음을 지닌다는 것도 사실상 자기기만이며 또한 위선일지도 모른다.

감기 때문인지 밤을 새는 동안 유난히 피곤했다. 감기약 먹고 한숨 푹 잔 뒤, 일어나서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도 해야겠다. 금방 다운받은 노래들을 틀어놓고 해야지. 마음이 어지러울 땐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멍하니 있으면 더욱 고루해지기 마련이다.

 

2008.2.15..

언제면 나는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관계와 관계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사는 이상 관계로 인한 고민은 언제까지나 계속되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빙빙 겉돌고 있는 느낌이 들 때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고민이 다시금 시작되고 만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그 속에서는 나 역시 평범해지고 싶은 것은 욕심이다. 내 마음은 나를 바꾸지 않으면서 욕심이 채워지기만을 원한다.

나는 진심으로 허물 없이 편안하게 얼굴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역시 진심으로 바란다.

이틀 동안 내리 두 시간씩 잤더니 선 채로도 잠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방 청소고 짐 정리고 뭐고 간에 일단은 푹-자고 피로도 감기도 개운하게 털어내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오늘 아침엔 병원 가야겠다 맘먹었는데 목소리가 조금 살아나니 마음이 흔들려 버렸다. 내 몸은 병원을 무서워하나 보다.

과제하러 간 피씨방에서 반가운 3종 세트를 만났다. 승민이, 성원이, 석용이, 반갑게 인사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딴짓하고 있었으면 아이들 앞에서 좀 창피했겠다 싶었다. 언제나 사이좋은 아이들이다. 참 예쁘다.

 

2008.2.17..

서남아시아에 가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똑똑히 기억해두고 싶다. 영상과 문자로 접하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아프고 직접 본다면 정말 처절하겠지만, 언젠가는 꼭 그러고 싶다. 그래서 뜬구름잡는 소리가 아닌, 진실된 목소리로 세계평화를 말하는 것이 내 소망 중 하나이다.

이외수가 그의 책 감성사전에서 평화를 강대국들이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했던 게 기억난다. 전쟁을 경제활동으로 인식하고 이용하는 자들은 죽어버려야 한다고 순간 생각했다가 다시 끄적거린 글을 읽고 나 역시 매우 폭력적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돈 많고 힘 있는 그들은 강해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으며 몸 사리기에 바쁜, 나약한 자들이다. 정작 다치고 죽고 대대손손 몸에 가슴에 피를 흘려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과는 무관한 엉뚱한 사람들인 것을.

난 액션영화를 제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폭력의 참상과 위험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과 문화와 경제와 정치와 그리고 교육에 폭력이 스며들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아예 모르고서 혹은 알고도 모른 척 넙죽 받아먹고 즐기고 산다. 무섭다. 폭력이라는 그 자체가 무섭고 그릇된 것임을 알면서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우리들이 더욱 무섭다.

 

2008.2.18..

너무 피곤해서 지각하기 직전까지 낑낑거리다가 편의점에 와서 머그잔 가득 커피를 타고 한 모금 꿀꺽. 나즈막히 나오는 한숨. 어느날부턴가 나는 심한 커피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커피중독자가 되게끔 했던, 커피 한 잔 쥐어주고 복도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바람 함께 맞아주던 친구들, 그 친구들이 참으로 그리운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들을 글로 조각조각 옮겨놓다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좋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보면 몇몇 손님들에게 굉장히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거기에는 내 피로가 한 몫 했고 1분도 될까 말까한 짧은 시간만 참으면 되며 아무 신경 쓰지 않고 훌훌 잊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삶을 향해 힘들다고 투정부릴 만한 이유도 생각해 보면 많이 어리다. 어느새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다. 여유를 찾길 잘한 것 같다. 불안하고 조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살님 같은 얼굴 아래에서 학점도 공부도 집도 돈도 내가 마주쳐야 하는 모든 일들이 걱정이고 걱정이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은 이제 한 시기를 내 손에서 놓아야 하는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좀더 일찍 불안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든다. 방랑은 그만하고 마음의 자리를 지켜야 할 때가 되었다.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나를 긍정할 것이다. 미련하다고 욕을 먹어도, 나는 많은 꿈을 꾸며 삶을 사랑하고 희구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2008.2.27..

다큐멘터리에서 산 가득 하얗게 쌓인 눈을 봤다.

겨울이 지나간다. 흰 눈이, 강원도의 흰 눈이 내 마음 속에 소복히 쌓일 때 인숙 언니 생각에 마음이 파르르 떨릴 것이다. 자취방 가득 노란 볕이 내린다. 봄이 와서 흰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면 白蝶이란 예쁜 이름이 있었던 인숙 언니의 흔적을 조심스레 좇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흰구름만큼 싱그럽고 자유로운 인숙 언니의 몸짓을 떠올리고,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에서 속절없이 마음이 흔들렸던 언니 생각에 내 마음도 시릴 것이다.

언니는 내게, 그렇게 마음을 보여주고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난 그렇지 못했다. 욕심이겠지만 언니의 기억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나 잡을 수 있을지, 내 무심함에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돌려놓고 싶어진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난 언니를 참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었다.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 위해선, 마음이 더 많이 단단해져야 한다.

 

2008.3.2..

나는 무섭다. 아예 모르는 사람들 틈새에 있는 것보다도, 알아도 그렇고 그런 사이의 틈새에 있는 게 더욱 힘들다. 개강 첫날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난 내일이 약간 겁이 난다. 또 구석구석으로 피해다니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겨우 개강 첫날의 분위기 하나 못 이겨내고 폭삭 바닥으로 꺼져버리는 나를 느낄 때마다,

자괴감에 심하게 눌린다.

어제 일을 해결했으면 삼월의 시작이 좀더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난 각오를 하고 산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이 있다 해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흔들리겠지만 절망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무겁다. 마음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2008.3.9..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마음 속에 슬픔 한 움큼 움켜쥐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픈 것이 삶의 마땅한 이치인데, 내가 아프다고 남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스스로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남을 탓하며 아픔의 뿌리를 그에게서 찾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라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아픈 것은 몰라주는 당신이 원망스럽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몫은 어느 만큼인지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

 

2008.3.10..

머리를 바로 세우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 지치다. 정말 지치다. 이번 주는 또 어떻게 견디나 싶어진다. 이렇게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적나라하게 보여서 눈을 감고 싶어지는데,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린다. 불안해진다.

사람이 불편해진다. 답을 어찌 찾아야 하나 싶다. 답은 어디에 있나. 답이 있긴 한가.

편의점에 히터를 틀어도 내가 있는 카운터는 언제나 냉골이다.

다사로운 봄은 언제면 완연하게 깃들까.

몸이 춥다. 마음이 춥다.

마음이 아프다. 아주 많이, 아프다.

 

2008.3.14..

통조림 같았다.

마음이, 잘게 저며지고 짠물에 재워져서 녹슨통에 꾸욱꾸욱 눌러담겨져서, 길고 긴 통조림의 유통기한도 넘겨버리고 상해버린 것같이, 그랬었다. 그랬었던 한 주였다.

과거형이다. 이젠 과거형이다. 통조림 따윈 버리고, 어쨌든 이건 내 삶이고 난 살아야 하고 버텨야 하고 씩씩해야 하고 언제까지나 꿈은 꾸고 싶으니까. 과거형이니 난 괜찮을 것이다.

이젠 얼굴에서 어린 티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열여덟 살, 3, 그때만 해도 정말 처절할 만큼 어른이 되기 싫었다. 하지만 난 피터팬이 아닌 것을. 시간을 붙들 힘이 내겐 없었다. 앞으로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어느 날부터는 찡그리지 않아도 얼굴 여기저기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길 것이고, 생각의 깊이도 더욱 깊어질 것이고,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어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여전히 시간을 붙들 힘은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스럽다는 것. -스럽다는 기준에 약간 못 미칠 때 쓰는 말인데. 어쩌면 어른스럽다는 말의 테두리 안에서 영영 어른다워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운 것. 어른다운 것. 사람다운 것. 이왕 어른이 되야만 한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적인 여러 모습들과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그런 마음을 모두 담기 위해서는, 두루뭉실하긴 해도 좋은 사람이란 말만큼 큰 그릇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어른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어른다운 사람. 그렇지만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 그리고 아름, 다운 사람으로.

 

2008.3.30..

어제 도서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어긋난 사랑에 대한 사연이 나왔다.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그녀에게 잘 지내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이 부분에서 볼륨을 키운다는 게 주파수를 건드려 버려서 급히 돌려 놓으니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는,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고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가 흘러 나왔다. 어떤 이야기일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어쨌든 이야기도 어긋남이었고 그 이야기를 손가락 하나의 어긋남으로 놓친 나도 그렇고,

삶에 있어서 순간의 어긋남으로 인해 바뀌어 버리는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읽은 소설도 어긋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랑만이 아니라 선택에 있어서 관계에 있어서 마음에 있어서 그 순간 그랬더라면 혹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고 곱씹게 되는 무수한 경험들.

순간이 어긋나 버리고 난 뒤에 다른 상황에 대한 기대로 후회하다가, 그로부터 마음이 아물 만큼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젠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순간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순간의 진실을, 순간의 소중함을 매번 잊는 내 모습을 헤아리다보니 마음이 애잔해졌다. 가끔은 이렇게 내 자신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다. 그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단 마음일 테다.

 

2008.4.19..

어젠,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고, 먹먹하고 먹먹할 만큼 많이 많이 생각했는데도 제대로 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많이 지쳤다는 이야기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보일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마음이 청개구리 같았다.

부끄러웠다. 많이, 부끄러웠다. 집에 가는 내내 현기증이 일었다. 감기 때문에 생각이 엉켜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마음이 그게 아니었다.

어제 든 생각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내게서 슬픔을 모조리 쥐어짜낸다는 게 가능한가 혹은 그럴 수 있다면 그 삶은 어떤가

효용성은 무엇인가

내 자리는 어딘가

거짓말이라도 할 걸 그랬나 싶었다.

 

2008.7.1..

표창을 받았다. 지금까진 내 이름 앞에 어느 학교, 몇 학년, 이런 수식어가 붙었었는데 학교의 수식어 없이 개인으로서 받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졸업과 관련은 없었지만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이제는 마무리지어야 할 때. 진짜 홀로서기. 조금의 두려움.

졸업사정을 받아야 하고, 사물함을 정리해야 하고, 도서관 책도 반납해야 하고, 교수님께 인사도 드리고, 졸업장도 받아야 하고. 이렇게 현실적인 마무리와 더불어, 학생이라는 역할 아래 다소 나태하고 다소 어리숙한 스물 둘의 모습도 벗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직은 아니야, 라고 몽니 부리는 어린애처럼 벌렁 드러눕고 싶은 마음.

이제 나는 뭐지.

이제 보호 받을 곳이 없구나.

 

2008.7.9..

타는 목마름.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치열한 정신이 참으로 그립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그토록 간절한 목소리로 비판할 수 있고, 푸른 하늘을 보며 자유를 노래할 수 있으며,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상과 삶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발휘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 그립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 역시 배부른 소리이며 허위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난 그 시절이 그립다. 조금의 진실과 진심이 왜곡되는 것에 화가 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러지 못하는가. 그 시절보다 풍요로워졌다 말하는 이 시대 탓이 아니라, 나는 그 사람들만큼 간절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다. 솔직히 달팽이처럼 집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싶은데 내게는 달팽이집이 없다. 그래서 음지만을 찾아 헤메고 있을 뿐이다. 갈증이 난다. 그러나 물을 찾아 다닐 간절함이 내겐 부족하다. 그 때문이다.

1920년대에 내가 태어났다면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인텔리라 불렸을 것이고, 생활력은 없으면서 삐딱선을 타고 있으니 룸펜으로 불렸을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다. 비판의식도 없고 바라는 이상도 없이 세상에 무뎌질까봐, 두렵다.

지난 날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나. 부끄럽다. 그리고 갈증이 난다.

 

2008.7.15.

꿈에 네가 나왔다. 사실을 잊지 않았는데 말이다. 너무도 해맑게 누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서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 깨어났다. 꿈이었다. 꿈일 뿐이었다.

윤성희 씨 소설에서, '기억이 살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죽지 않은 거야.'라는 말을 믿을 수 있는 건 내 망각에 한해서이고 자기 위로와 연민일 때 가능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거린들 실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체의 유무를 마음에까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내가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잘 버틴다. 그럴 자격도 안 되는 내가 잠 못 자며 질질 짜고 있을 일이 아니다. 부쩍 우울해진 것은 칠월이기 때문일테다. ,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예쁜 너를 생각하며 웃음지을 수 있을 것이다.

밉다는 것을 완결된 문장으로 써 놓으면 정말 그 말대로 더욱 미워질 것만 같아서, 잠깐의 마음이 영영 굳어버린 현실이 될까봐 마음을 쉽게 꺼내놓지 못하겠다. 어떠한 요구를 계속해서 받는다는 것에 마음이 힘들다.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서 자신이 없다. 힘이 빠진다.

 

2008.7.27.

드라마에서 엉엉 울고 있는 중년 사내를 보고 있자니 시큰해졌다. 생각해 보니 내 감정에 스스로 솔직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했다. 아이들에게 시 속 화자의 정서를 파악하라 가르치고 분석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극중인물의 감정을 헤아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문장을 옮겨적고, 노래를 들으며 어떻게든 내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며, 그리고 그 안에, 나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외부의 대상으로 인하여 촉발되는 감정이거나 그 대상의 감정에 전이되는 것일 뿐이었지 오롯한 내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기쁜가 슬픈가 즐거운가 외로운가 두려운가 분노하는가 지루한가 나는 어떤가……. 내 감정에 침잠하길 나조차 거부하는데 내가 누굴 이해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가.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2008.7.31.

이청준 씨, 당신과 같은 소설가가 또 나올 수 있을까요.

좋은 소설, 한결같은 모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침대에 푹 퍼져서 모기향에 취해서 자는 동안 간밤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사람은 왜 죽을까. 죽음이 우리에겐 가장 큰 한계일까. 도전해서도 안 되며 결국은 인생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죽음.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렇게 만든 그것. 죽음이 내 삶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게 사실 많이 무서워. 바다만 봐도, 구급차만 봐도, 나랑 얽혀 있지 않은 사건 사고만 들어도, 가슴은 쿵쿵거리고, 정신은 아득해지고, 코는 시리고. 어른들이 그와 관련된 말들을 금기시하는 까닭을 이제 나도 알아버렸다는 게,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슬프다.

 

2008.8.1.

순간 문자가 잘못 왔나 싶었다. 수능? 아직 아닌데? 아하…… 그래, 그렇지. 늦잠 잔 주제에 늑장부리다 결국 택시까지 타고야 만 게으름 속에, 유리조각처럼 콕 박힌 현실감. 그 현실감이 생각보다 깊이 박혔나, 몇 시간 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객기도 여유가 있어야 부릴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그 여유에는 경제적 여유 역시 포함되어야 하는 듯하다. 이런저런 여유도 없고 거기에 용기마저 부족한 주제에, 라는 자격지심이 슬몃슬몃 올라오는 것을 녹차 한 컵으로 지그시 눌러놓고 있는 지금, 그래도 나는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내 마음은 내가 알지, 그래서 이렇게 모른 체 하는 거지. 내 삶이고 내 선택이고 내 마음을 따르는 것인데, 내가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도 조금은 필요한 건데.

 

2008.8.6.

요사이 본 영화와 책들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정리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도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서 손을 놓아버리길 벌써 몇 차례다. 글을 쓸 때의 즐거움과 두근거림보다 흔적이 남기에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커져버려서 선뜻 종이에 펜을 대기 두려워지는 요즘, 소설 쓰기를 당당히 공개하는 친구의 자신감이 무척 부럽다. 소설책을 펼쳐들 때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내게 벅찬 감동인데, 마음은 그런데, 내 손은, 내 머리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발 동동 구르는 조급증 환자마냥, 아아, 속상하고, 불안하고, 힘이 빠져.

 

2008.8.11.

눈꺼풀에 잠이 그득그득 몰려들어서 맛있는 커피 생각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가 비어 있어서 신나게 앉았는데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녀석으로 나와 버렸다. 다시 말할 용기가 안 나서 그냥 들고 후후 불며 마신다. 아아, 잘못된 주문 하나 고칠 용기마저 없다니.

옆자리에서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내의 말을 설핏 엿듣는다. 이상하게도 달변가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상대적 소외감 때문인 것도 약간 있다. 그런데 나 역시 아이들에게 말로써 내 자격과 역량을 포장하고 있다. 이러한 포장은 얼마 가지 않는다. 나는 위선이다. 더 많이 드러내어 찍히고 다듬어져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나 자신에 대한 연단질을 자꾸만 미루고 있다.

저 사내는 장밋빛 마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설득한다. 달변가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 나의 미래, 장밋빛에서 채도는 0으로 내려가 버린, 회색빛 미래. 이러다 내 안에 거미줄이 들어서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내가 꿈꾸는 것들에 대해, 왜 나는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걸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말로 포장하지만 그 속에는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가시와, 터무니없이 부족한 준비로 쪼글쪼글 말라버린 속만 있음을, 난 안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욕심이 없기 때문인 걸까.

난 항상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품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포장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고 싶고 그늘의 선생님이 되고 싶고 문학치료를 공부하고 싶고 강단에도 서고 싶다. 욕심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내게 더 많은 정서적 보람과 지적인 만족감(이것도 어쩌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을 가져다 줄지 재고 재는 것만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 내 자리에서 한 걸음도 앞서갈 수 없는 것을, 난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자꾸 모른 체 하고 싶어지고 마는 것이다.

 

2008.8.31.

늘 생각만 하며 입술만 옴싹거리던 말을 꺼냈다. 이성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상황에서 눈물이 자꾸 나오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말하기 전에 감정을 다스리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아닐까. 발표는 잘 하면서, 나는 사적인 말하기 그리고 설득하는 말하기에 상당히 취약한가 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설득할 만한 말발도 되지 않았고 경험도 없으며 안일하다면 안일한 생각이고 준비도 부족했다. 말을 끝맺고 나면 내가 이유라고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떠오르는데 그 순간은 어떻게든 눈물만 안으로 삼키려고 애쓰다 보니 목소리만 덜덜 떨렸다. , 라는 대답 하나면 쉽게 끝날 긴장이었으나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상황을 앞으로 여러 차례 부딪쳐야 할 것이며 선택에 대한 대가를 또 수없이 치러야 할 것이고, 지금보다 더 힘들고 막막할지도 모른다. 내 삶이니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다.

 

2008.9.23.

하루종일 빳빳한 긴장감에 싸여 있던 몸을, 집에 들어와 쪼그려 앉아서 혹은 누워서 북북 긁어대고 있으면 몸에서 통나무 긁는 소리가 났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면과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같은 섬유 밑에서는, 나만 느낄 수 있는 허연 껍질이 내 몸에서 자라고 있었다. 깨끗이 방을 닦아도, 다음날 손으로 방바닥을 쓸어보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껍질이 보기싫게 묻어났다. 비록 도시병이라 일컫는 아토피피부염 탓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꿈 속에서, 바삭바삭 바스러지는 껍질 아래 연하고 푸른 잎을 밀어내려 버둥거리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2008.10.8.

이곳에서의 나는 시원찮게 일하는 것 같아서 못마땅하게 보시진 않을까 눈치만 살피던 중에, 야쿠르트 아주머니께서 다리 아프지 하시며 우유를 두 손에 따뜻하게 쥐어 주셨다. 이상하다. 사람들은 내게 자꾸 뭘 먹이고 싶은가 보다. 나를 보면 그냥 뭔가 주고 싶다며 딸기우유를 줬던 선배, 편의점에서 일할 때 삼백 원 짜리 껌을 사면서 내겐 이천팔백 원 짜리 커피를 사주셨던 아저씨, 스무 살을 훌쩍 넘겼는데도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라며 뭐든 먹이려는 고모, 그리고 오늘 고마우신 아주머니까지. 칼을 들이밀고 나를 협박했던 사람을 생각하면 세상은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세상은 따뜻하며 또한 더 나아질 거라고 신뢰할 가치가 있다.

먹을복, 일복과 더불어 이제는 사람복도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삶에 대하여 나는 조금 더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가끔은 원망어린 생각을 해도 커다란 삶 속에서 아주 작은 투정일 뿐이고, 빚지며 산다는 이 책무감 덕택에 되려 나는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2008.11.14.

이맘 때부터 겨울의 끝자락이 지날 때까지 오른손이 부르트는데, 매선 바람이거나 건조한 날씨이거나 가려움을 못 참고 긁어서이거나 혹은 이 몇 가지가 서로 얽혀서 내 손가락 마디들을 칼로 베어 놓은 것처럼 빨갛게 벌려놓고 나서야, 약을 발라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은 손가락들이 너무 답답해서 입을 벌리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듣는 말은, 이젠 우리에게도 신경 좀 쓰라고. 내 몸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센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풍성한 이삭을 맺어 흐뭇하게 하는 벼들은, 그해 봄 지독한 가뭄 속에서 버티기 위해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렸다 한다. 깊은 밤 눈으로 벽지를 긁어대며 마음의 출렁임에 잠까지 잃어버리고, 가끔은 차라리 코피라도 나 주었으면 위안이 될 텐데 할 만큼 온몸이 퍽퍽해질 즈음이라도, 나는 내 삶에 뿌리를 좀더 깊이 내리는 중일 테다. 그러면 나는 태풍이 와도 견딜 수 있을 것이고 황금이삭처럼 잘 여물 수도 있겠지. 다시금 어쩌면 처음으로 봄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가끔씩 햇볕맞이는 할 수 있었으면. 단단한 사람은 되어야겠지만 괴팍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되지.

그나저나, '한아름'답다는 건 말이다. 내 가능성을 설명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내 한계를 설명해 주는 것인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나답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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