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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문학과지성사, 2006.


2008.9.21.

요즘 읽는 소설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위태위태한, 흔들리는 청춘의 이야기.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닌데도 우연의 일치라 해야 할 만큼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마주하게 되는 건, 너 이제 정신 좀 차려라- 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열여덟, 열아홉 그 무렵 존재론적인 막막함에 어쩔 줄 몰랐다면, 스물둘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인 막막함에 또한 쩔쩔매고 있으니.

과외가 끝나고 신호등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여대생 두 명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틈날 때마다 소설 계속 쓴다고, 몹시 부끄러워하지만 친구에게 말하는 그 목소리에는 여리지만 떳떳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같이 수업을 받았던 국문과 학생인 듯했다. 나는 쥐뿔도 없으면서, 하나도 잘나지 않은 주제에, 아무런 글도 못 쓰고 어쩌면 안 쓰고 있는데, 그러면서 꿈을 꿀 자격은 있는 걸까.

미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늘어가는데 나는 내 꿈을 소중히 여긴다는 이유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소중함 때문이 아니라 부끄럽고 자신없고 자꾸 자격을 의심하게끔 되는 마음 탓인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자꾸만 가슴에 짐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은, 밖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그 짐들 속에서라도 숨고 싶어하는, 내 자신이 어떻게든 끌어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껴안아야, 이곳에 나는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말이다.




pp.42-43.
성장은, 긍정적 의미로 충만한 단어다. 고통을 통해 정신의 키가 한 뼘 자랐으며 보다 성숙한 인간에의 길에 한발 다가섰다고 믿고 싶은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합리화시키면 마음이 좀 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옛 애인의 결혼식 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제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뿌듯해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왜 어른은 울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른들도 때론 흐느껴 운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무도 알지 못할 때, 눈물 없이도 메마른 가슴으로 통곡한다. 그것이 이 도시의 비밀스런 규칙이다.


p.227.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인정해 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p.227.
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 가마니 하나씩은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p.439.
해마다 어김없이 봄꽃은 피었다 지고, 우리는 여전히 막막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시 십 년쯤 뒤 우리는 또 어딘가에 모여 꽃이 지는 이유를 추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 모두 조금, 아주 조금씩은 달라져 있겠지. 꽃이 지는 새로운 이유를 발견해 냈겠지.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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